예천 지보면 대죽리의 말무덤(言塚)을 찾아가다가 먼저 신풍마을에 들렸다. 신풍리와 대죽리 사이는 들머리 하나를 둔 가까운 거리다. 남으로 길게 흘러내린 낮은 언덕배기 밭자락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로 나누어진 것이다. 마을 앞으로 제법 넓게 펼쳐진 들녘, 낙동강이 빚어낸 비옥한 땅은 겨울의 쉼을 거두고 봄 햇살을 모으기 바쁘다. 강은 시오리 남짓 동쪽으로 흘러 내성천을 만나고 삼강을 이룬다. 1914년 그 이전만 하여도 모두 상주목 용궁현 땅, 한대마을이었던 것인데 지금은 예천군 지보면의 신풍리와 대죽리로 아주 다른 마을이 되어있다.신풍리에 들어서면 특별한 마을의 향훈에 젖는다. 처마 끝을 마주 보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야 여느 촌락과 다름없지만 400~500년은 족히 되었을 고목의 회나무, 그것마저도 6·25전쟁의 탄흔을 안고 있는 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연둣빛 새잎을 보노라면 새삼 경이로워진다. 초록 세상에 하얀 눈송이로 덧칠을 한 듯한 눈부신 옥매화가 온통 흙 담장을 가리는가 하면 짙은 향기를 흩날리는 라일락도 마을의 그윽한 기운을 돋워준다.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죽호고택(竹湖古宅) 앞에 이르자 비로소 이곳이 땅과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곳이었음을 알게 된다.
주택과 무덤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이 성사됐다. 주인공은 “재산을 친척에게 주지 않겠다”면서 주택을 주고 무덤을 받기로 했다. 83세 우루과이 할아버지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북쪽으로 200km가량 떨어진 비샤델카르멘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일찍 가족들을 잃고 혼자가 됐다. 80세를 넘기면서 조용히 인생을 정리할 준비를 하던 할아버지. 그러나 조카들이 할아버지의 전 재산인 집을 노리는 걸 알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상속인이 없어 자신이 사망하면 집을 물려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카들이 할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달려들자 괘씸한 생각이 든 것. 할아버지의 집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2100만원 정도인 서민주택이다. 큰 재산도 아닌 걸 노린 조카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솟았다. 할아버지는 “조카들에겐 절대 집을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시 당국과 접촉에 나섰다. 집을 넘겨줄테니 공동묘지에 무덤 1기를 달라면서 시 당국과 협의에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된 시장은 물물교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망 후 재산(집)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잠들
고고학자들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던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 미국, 에콰도르 고고학자로 구성된 팀은 아마존 밀림에서 이 유적지를 발견했다.안데스 산맥 및 '바뇨스 지 아구아 산타' 마을에서 약 30km 떨어진 밀림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높이 80m, 2톤이 넘는 거대한 바위로 구성돼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지가 '아타우알파'의 무덤으로 확인되면 고고학사의 한 획을 긋는 대발견이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아타우알파'는 잉카 제국 14대 마지막 황제로 스페인 식민지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감금되자 자신의 몸값으로 어깨 높이에 이르는 황금을 감금된 방안에 가득채울수 있을 만큼 주겠다고 제안했다. 피사로는 이를 수용해 아타우알파는 자신이 감금된 방으로 황금을 수송시켰지만 결국 반역죄 혐의로 처형된다. 이후 이에 아타우알파는 미이라로 만들어져 매장됐고 그 무덤에는 황금이 가득차있을 것이란 전설이 생겼다.
53개국 참여, 한국 38만여 명 세계 최다'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강제장기적출 반대하는 유엔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이 전 세계에서 약 150만 명이 동참한 가운데,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DAFOH의 한국 내 서명 캠페인을 지원한 IAEOT는 지난 9일 11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세계 및 한국의 서명활동 성과와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다. 이번 서명 캠페인은 국제 의사 NGO단체인 DAFOH 주관으로 지난 7월부터 11월말까지 4개월간 세계 53개국에서 동시 진행되었다. 한국은 약간 늦은 7월 20일부터 이 운동에 합류했지만, 총 385,405명이 서명하면서 세계 1위의 서명인 수를 기록했다. 특히 의사 7,142명이 서명에 동참함으로써, 한국의 높은 의료윤리 인식을 새롭게 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 DAFOH 자문위원이자 IAEOT(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 회장인 이승원 박사는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의대생, 기독교인, 교사 등 세대와 신분을 망라한 자원봉사 지원이 이어진 점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는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한국인 특유의 도덕성과 정의감의 표현이다”고 해석했다. 한편 이번 전 세계 서명운동을
부케는 라틴어로 ‘작은 숲(bosquet)’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어 프랑스어로 ‘다발 또는 묶음(bosque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웨딩부케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000년 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특히 고대 왕들은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풍요를 상징하는 곡물 다발을 부케로 사용하였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이후 중세부터 부케의 소재가 꽃으로 바뀌면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용도로 쓰였다. 또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행위는 영국에서 시작됐다. 특히 영국은 신부가 다른 사람에게 행운을 준다고 여겨 하객들이 신부의 옷이나 꽃을 서로 가져가려고 싸움이 나기도 했다. 이에 신부가 하객들의 다툼을 방지하고자 꽃다발을 던지게 됐는데 근래에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지"숙종대왕이 어느 날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 묘 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 하고 물었다.‘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 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하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나리에게 하소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를 통해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이 5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낙찰됐다. 프랑스 드루오 경매장에서 6일 영국 세인트 헬레나섬 유배 당시 나폴레옹이 남긴 유언장 사본이 경매에 올랐다.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은 세금과 수수료를 포함한 35만 7000유로(약 5억 1000만 원)에 한 프랑스인에게 낙찰됐다.이 사본은 1821년 나폴레옹 유배 당시 그를 가까이서 보필한 몽톨롱 백작에 의해 작성됐다.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은 몽톨롱 백작이 같은 종이와 잉크 깃 펜을 사용해 작성했다.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에 따르면 “내 유해는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파리) 센강 가에 뿌려지길 원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나폴레옹의 친필 유언장 원본은 프랑스 국립문서 보관소에 있다.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를 통해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이 5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낙찰됐다. 프랑스 드루오 경매장에서 6일 영국 세인트 헬레나섬 유배 당시 나폴레옹이 남긴 유언장 사본이 경매에 올랐다.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은 세금과 수수료를 포함한 35만 7000유로(약 5억 1000만 원)에 한 프랑스인에게 낙찰됐다.이 사본은 1821년 나폴레옹 유배 당시 그를 가까이서 보필한 몽톨
일반 사람이라면 시신과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강철심장을 가진 브라질의 한 노숙자는 달랐다. 영국 일간지 미러에 따르면 사건의 주인공 브라질의 노숙자 파비오 베랄도리골(47)이 교회의 지하실에 마련된 무덤에서 백골 상태의 시신과 13년동안이나 같이 살아온 이력이 밝혀져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그가 과거에 이곳을 자신의 집으로 선택한 이유는 사업이 망하고 약에 중독되어 찾은 것을 알려졌다. 그는 밖에서 사는 삶이 죽음보다 무섭다며 교회내 무덤에서의 삶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는 아직까지 귀신을 본 적이 없으며 설사 귀신을 목격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수다쟁이가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곳 생활이 자신에게 꼭 알맞는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내 사망자들의 사망원인 1위는 여전히 자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28일 군사법원을 대상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군내 사망자는 559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자살자는 377명으로 전체사망자의 67.4%를 차지했다.올해의 경우 6월말 현재 군내 사망자 63명 가운데 자살자는 45명으로 71.4%에 달했다. 특히 병사의 자살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74.7%로 장교나 부사관, 군무원보다 높았다. 김 의원은 “지난 2009년부터 ‘자살예방종합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국방부의 대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자살의 원인을 지휘관의 인권의식과 잘못된 군 시스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의 사고와 인내심 부족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최근 발굴된 에트루리아 고분 속에서 창을 손에 든 2천600년 전의 유골이 발견돼 현지 언론들로부터 `에트루리아의 전사(戰士) 왕자'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토리노 대학 과학자들이 유골을 분석한 결과 주인공은 35~40세의 여성으로 밝혀져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주고 있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22일 보도했다. 기원전 400년경 로마제국에 흡수된 고대 왕국 에트루리아의 대규모 공동묘지였던 타르퀴니아는 암석층을 깎아 만든 6천여 기의 고대 무덤들이 발굴된 곳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발굴팀은 최근 이 곳에서 완전히 밀봉돼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상태의 새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판을 치우자 두 개의 큰 판이 드러났는데 그 중 하나에는 창을 든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누워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타다 남은 또 하나의 유골이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여러 개의 장신구와 구리로 도금된 상자가 나왔고 그리스-코린트 식 그림이 그려진 향유병도 안쪽 벽의 못에 걸린 채 발견됐다. 학자들은 처음 창을 쥔 유골이 남성 전사, 아마도 에트루리아의 왕자일 것으로 생각했고 장신구들은 옆에 누워 있는 다른 유골, 아마도
진흙밑에 묻혀있던 비잔틴 시대의 예배당이 700년만에 거의 원형을 간직한 채 발굴되었다. 예배당은 오늘날 터키의 뎀르라는 마을의 땅속에 묻혀있는 옛 비잔틴 시대의 도시 미라(Myra)에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터키 발굴단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라는 청동기 시대부터 형성된 도시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이곳을 4세기쯤 그리스계의 후손인 니콜라스 주교가 기독교의 수도로 변모시켰다. 주교는 후에 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그가 만든 도시는 비극을 맞았다. 비잔틴 제국의 성지가 된지 약 800년 뒤인 13세기쯤 이곳은 인근 미로스 강의 범람으로 약 5.5m두께의 진흙에 묻혀버리며 사라졌다. 남아 있은 것이라곤 5세기에 지어진 비잔틴 양식의 성 니콜라스의 교회와 로마 양식의 원형극장, 무덤 뿐이었다.700년간 사라졌던 도시는 고고학 발굴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고고학자들은 지표투과 레이더를 이용해 2009년 처음 벽과 건물의 모양을 갖춘 이상지대를 발견했다. 그후 2년에 걸친 발굴 조사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잘 보존된 작지만 놀라운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배당의 한쪽 벽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창이 나 있어 태양이 뜨면 햇살이 제단 위에 비쳐 빛의
미국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환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락사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병에 따른 고통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선택권 때문이었으며 예상과 달리 백인, 고학력, 부유층이 안락사를 많이 선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안락사를 허용하는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오린건주가 1997년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을 통과시킨 첫해에 안락사 환자는 사망자 1천명 당 1명꼴이었지만 현재는 사망자 500명 중 1명 정도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2009년 안락사를 허용한 워싱턴주에서는 157명이 안락사로 삶을 마감했다. 이는 사망자 1천명 당 1명에 해당한다. NYT는 안락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오리건주와 워싱턴주가 안락사를 허용한 이후 수천 명이 이들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NYT는 또 안락사를 허용하면 자연사할 때까지 병을 치료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계층에서 많이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안락사 처방을 받은 환자 중 백인, 고학력, 부유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밝혔다. 안락사를 선택한 환자들은 병에 따른 고통이 아니라 자
아키히토(明仁·78·) 일왕이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일본 정부가 일왕의 장례식 간소화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아키히토 일왕은 최근 자신의 장례를 비용이 많이 드는 매장(埋葬) 대신 화장(火葬)·부부합장(合葬)을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아키히토 일왕이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은 경기침체로 왕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워지자 국민과 함께하는 왕실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일본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宮內庁)은 15일 왕실 장례 절차 간소화 방안을 내년 봄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키히토 왕의 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의 경우, 1989년에 치러진 장례식 비용으로 97억5000만엔(약 1415억원)이 들었다. 당시 일본 왕실 장례절차(大喪�J)에 따라 대규모 장례식장이 신주쿠교엔(新宿御苑·공원)에 설치됐다. 장례식장 설치와 관련된 비용에만 29억엔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 비용의 95%는 정부 예산에서 지급됐지만 당시는 일본 경제가 최절정의 버블기여서 장례 비용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다.일본 정부는 신주쿠교엔에 장례식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국왕이 죽으면 사인을 명백히 규명하는 검시 과정을 거친 후 방부처리를 하여 미라를 만들었다. 사체의 방부처리 기술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은 헨리 1세(재위 1100~1135), 프랑스는 필립 4세(재위 1285~1314)부터 공식 언급되었다. 국왕이 서거하면 혹시 다시 숨이 돌아올지 모르므로 24시간을 기다린 후에 궁정의 주요 인물들과 의대 학장이 입회한 가운데 검시를 시작했다. 왕실 수석 외과의가 흉골에서부터 치골까지 길게 절개하여 흉부와 복부를 열면 참여 의사들이 내장·위장·비장·간·심장 등 주요 장기들의 상태를 관찰한 후 기록으로 남겼다.그 후 방부처리 과정이 진행된다. 혀와 눈을 비롯하여 부패하기 쉬운 기관들을 제거하고, 정향·장미수·레몬·오렌지·안식향 등의 물질이 함유된 방향성 포도주로 사체를 씻은 다음, 면으로 입·눈·코·귀를 막고 왁스 입힌 천으로 싼다. 사체에서 나는 냄새는 잘못 맡으면 즉사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각종 방향제를 사용했다. 사이프러스 껍질·라벤더·로즈마리·소금·후추·압생트·몰약·정향 등 여러 물질을 몸 안에 채워넣은 후 사체를 봉합하였다. 적출한 내장들, 혈액, 지방 그리고 수술 중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알약 형태로 개발됐다고 1일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미국 스페큘러티브 테크놀로지사의 ‘버추얼 리서치 연구소’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화관에서 분해되지 않는 경구용 옥시토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사랑과 유대, 신뢰감 등을 강화해주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이를 복용할 경우 소화관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다. 연구소의 프라이즈 이그노벨 소장은 “옥시토신 분자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나노 보호막으로 둘러싸는 분자제어 기술을 이용했다”며 “일단 혈관에 침투한 다음엔 보호막이 순차적으로 분해되게 만들어 약효 지속기간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임상 시험 결과 인체 독성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약효 지속기간은 기존 주사제나 스프레이의 6~20배로 확인됐다”며 “FDA에 이미 판매 승인을 신청했으며 제품은 이르면 내년초 시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피부로 흡수되는 패치 형태의 시제품도 임상시험이 마무리 단계”라며 “1주일에 한번만 갈아붙이면 약효가 지속되는 편리함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