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영훈 작곡가의 유훈/●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삶과 사랑은 하늘의 구름과 같이 항상 흘러만 갑니다./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하지만/돌아보면 그 사이 먼 곳으로 사라져가 없습니다./항상 사랑하고 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여러분께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작곡가 이영훈 ●차인표씨의 병문안 글/ 몇주 전, 이영훈 선생의 투병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습니다. 주영훈씨와 함께 갔습니다. 이 선생은 온 몸에 주사기를 꼽고 계셨지만,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몸이 무척 말랐습니다.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게 된지 한달이 넘었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 이 선생을 보며, 한달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 선생이 그랬습니다. 저는 죽는 것은 겁나지 않아요.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을 아니까요. 그런데, 내가 조금 더 살 수만 있다면 꼭 하나님이 기뻐하실, 하나님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잠시 이야기를 하는 데, 이 선생의 몸에 열이 다시 올랐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데, 이 선생의 침대 머리맡
●57년전 혼인신고도 못한채 남편 한국전 전사●사실혼 관계 승소로 국립묘지 함께 안장 가능●우모 할머니(80)는 1946년 만주 간도성 용정시에서 태평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김모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그 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의 품에 안긴 기쁨도 잠시, 우 할머니의 남편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장교로 참전했고 1951년 강원도 고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혼인신고도 미처 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 할머니의 남편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할머니는 남편이 전사한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57년 동안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사망한 남편의 사실상 배우자로 인정돼 1955년부터 유족연금도 지급받았다.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죽어서라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우 할머니가 ‘법적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는 야속한 답변을 보내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놀란 할머니는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 측은 ‘우 할머니와 사망한 남편 간 사실상 혼인관계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지난해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우 할머니는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아 남편의 호적에
●강제징용 유골 101위 봉환 추도식… 日 외무성 부상 “식민지 고통 사과”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징병돼 집을 나섰던 형님.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 한 줄 없더니 한 줌의 뼈가 되어 이역만리 낯선 땅에 63년이나 잠들어 있었구려.” 일제강점기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전장에 끌려가 숨진 뒤 일본 도쿄(東京) 유텐(祐天)사에 백골로 안치돼 있던 한국인 101명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식이 22일 이 사찰에서 열렸다. 101위의 유골을 꿈에 그리던 고국 땅으로 봉환하기에 하루 앞서 열린 추도식에는 김경봉(73) 씨를 비롯한 유족 50여 명과 한일 두 나라의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아홉 살 때 전장으로 형을 떠나보낸 김 씨는 유족들을 대표해 읽은 추도사에서 “부디 오늘 하루만 더 참으시고 고향 땅에 돌아가면 모든 굴욕과 애절함을 잊고 편히 잠드시라”고 원혼들을 달랬다. 이번 유골봉환 대상 101명 가운데 87명은 구 일본군의 육군(군인 38명, 군속 49명), 14명은 해군(전원 군속)에서 강제 복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 지역별로는 △일본과 중국이 각각 22명 △파푸아뉴기니 11명 △미얀마 10명 △인도네시아 10명 △필리핀 6명 △대만 4명 △태국
●현대家 전통장례‥LG家 · SK家 실용주의 ●최근 들어 재벌가 1, 2세대들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소식이 잇따르면서 이따금씩 재계는 슬픔에 잠기곤 한다. 오늘의 재벌가가 있기까지 성장시대를 이끌었던 대기업들의 창업주와 반려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많은 이들은 숙연해지지만, 그들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질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재벌가 장례문화를 들여다봤다.◆대중들의 시선의식…호화스러운 장례문화 지양 추세…화장장도 부쩍 늘어재계 관계자들 사이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재벌가 식구들의 장례는 저마다의 가풍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많은 대중들이 그들의 장례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상상해보지만 정작 일반인들의 장례모습과 비슷하며, 생각하는만큼 성대하게 치러지지는 않는다고 한다.재계의 한 관계자는 많은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에 호화스러운 장례문화는 지양하는 추세로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다만 여느 장례식과 달리 각계각층에서 온 조문객들이 많다는 점과 보통 4, 5일장으로 일반적인 장례 절차에 비해 일정이 다소 긴 점은 그들만의 장례문화가 되고 있다.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화나 부의금은 받지 않는
- "천의 바람이 되어"를 열창하는 팝페라 가수 "로즈장" 한 장례업체가 기획한 추모곡이 점차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종합장례업체인 ‘(주)하늘문화원’과 장례전문지 ‘하늘문화신문’이 유명작곡가인 임긍수님에게 의뢰하여 만든 “천(千)의 바람이 되어”는 재미 팝페라 가수인 ‘Rose Jang’이 부른 곡인데 지난 3일 저녁 서울 강동구 소재 ‘윌드글로리아센터’ 언더우드홀에서 개최된 평화음악회에서 역시‘ Rose Jang‘이 이곡을 직접 불러 장내 가득 입장한 청중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음악회가 끝나고 가진 리셉션에서 함께 만난 작곡가 "임긍수님"과 "Rose Jang" 그리고 김동원 발행인은 이 곡을 한국의 추모문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적극 홍보하기로 약속했다. 한편 KBS2 TV에서도 12월 6일 심야 프로인 ‘낭독의 발견’에서 ‘천의 바람이 되어’가 낭독되면서 이곡을 배경음악으로 소개될 예정으로 있다. 이 곡을 작곡의뢰하게된 계기는 지난 3월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하늘문화신문 주관으로 거행된일본 유명상조회사 "썬레이"의 CEO 사꾸마 사장 초청 특강에서 그에게서 이곡에 대항 일본의 소식을 접한 후 장만석교수와 김동원 발행인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곡을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때에는/신이시여/아무리 강렬한 화염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옵소서/너무 늦기전에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가날픈 외침까지도 들을수 있게 하시고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저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제가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하시어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지키게 하여 주소서그리고신의 뜻에 따라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신의 은총으로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 소방관의 기도문 -*********************************************************** “화마(火魔) 속에서 넌 얼마나 기다렸을까. 왜 우리는 너의 외침을 좀 더 빨리 듣지 못했을까. 사랑하는 동기 재희야. 아직도 너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즐겁게 살아가자고 해맑게 웃으며 따뜻함을 안겨줬던 너인데….”11월 30일 오전 10시 경기도 이천 CJ공장 화재 현장에서 숨진 고(故) 윤재희 소방관 영결식이 열린 이천소방서. 윤 소방관의 동기 김현숙 소방관이 읽어 내려가던 추도사는 중간중간 끊어졌다.
◆타계 20주년 맞아… 이건희 회장은 불참 ◆삼성그룹은 19일 창업자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타계 20주년을 맞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내 호암 묘역에서 추모식 및 묘소 참배 행사를 가졌다.이날 행사에는 추모위원장인 강영훈 전국무총리,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현승종 전 국무총리, 권이혁 서울대 명예교수, 김태길 대한민국학술원장, 김종량 한양대 총장 등 추모위원들과 내외귀빈, 삼성.한솔.CJ.신세계 등 범삼성가 가족 및 친지, 삼성 사장단이 참석했다.추모식은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의 약력보고, 강영훈 추모위원장의 추모식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추모사, 김남조 시인의 추모시 낭독 등으로 약 30분간 진행됐다.이와 함께 경남 의령군 정목면 고 이병철 회장 생가에서는 삼성 사장단과 호암재단 관계자, 지역기관과 사회단체장 및 주민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생가 개방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호암재단 주관의 기념식과 정곡면 행사 추진위 주관의 마을잔치 등으로 구성됐다.
●영혼 씻고 귀천한 ‘씻김굿 명인’ 故 박병천 선생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독특한 장례의식인 진도 씻김굿이 무형문화재 고(故) 박병천 선생의 장례식을 맞아 지난 24일 전남 진도군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에서 열렸다.지난 20일 지병으로 타계한 박병천 선생을 위한 씻김굿은 박선생의 오랜 친구인 중요문화재 81호 강준섭 선생(75)의 ‘다시래기굿’으로 문을 열었다. 다시래기굿은 출상 전 초상집에서 상두꾼들이 상주를 웃기기 위해 벌이는 민속놀이로 남도 특유의 해학과 익살이 돋보이는 민속놀이다.강선생은 고령임에도 친구의 유언에 따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굿을 온몸으로 펼쳤다. 굿을 마친 강선생은 “당신은 가지만 못 가는 내 심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며 “극락왕생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굿을 했다”고 말했다.씻김굿은 죽은 자의 혼령을 부르며 굿의 시작을 알리는 ‘안당’부터 시작됐다. 하늘님을 모시는 ‘제석굿’과 망자의 넋을 불러 극락으로 인도하는 ‘지전춤’에 이어 ‘넋올리기’와 ‘고풀이’로 이어졌다. 고인의 넋을 달래러 전국에서 모여든 500여명의 ‘산 자’들도 슬픔을 함께했다. “늙은 사람 죽지 말고 젊은 사람 늙지 말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지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한 켤레를 주목했다.20일 안동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의 사진과 사연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에 실렸다. 기사는 이렇게 정리돼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가 애절한 편지와 함께 발굴돼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1586년 6월 1일 지금의 안동시 정상동 지역에서 살던 임신한 과부가 사별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그녀는 병든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를 한데 삼은 미투리를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묻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유물들이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작업 중에 발굴됐다.편지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그녀의 사랑이 담겨 있다. 꿈에 몰래 와서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소이다.이 편지를 소재로 한국에서는 소설 두 권과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되고 무덤 자리엔 여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16일 장기기증자 추모와 감사의 밤 행사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는 16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뇌사장기기증자 유가족과 관련 종사자를 초청 장기기증 추모와 감사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행사에는 뇌사 및 사후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사후 인체조직기증자 유가족 등 약 180명을 포함, 장기이식 관련 단체장· 의사· 코디네이터· 홍보 담당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제1부 기념행사와 제2부 희망공연 행사로 진행한다. 제 1부에서는 기증자 유가족 및 기증 활성화에 기여한 기관에 대한 감사패 증정과 유공자 표창을 하고, 유족의 추모의 글· 수혜자의 감사편지 낭독과 생전의 사진 영상 등을 통해 뇌사기증자를 추모했다.심리치료 전문 강사를 초빙해 기증자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시간도 가졌는데 유족 가운데는 연세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던 고 박진성 씨의 부모도 참석했다.박 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27세의 젊은이로 대학원 총학생회장에 선출된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나면서 신장병 환자 등 7명에게 장기를 기증했다.장기기증 활성화에 공헌한 기관으로는 지난 5월 총 6217명이 장기기증 희망서약을 해 단일기관 장기기증 희망서약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현대 중공업 노조에 대한 감
●개그맨 김형곤 타계 20개월만에 유골 안장●시신 의학연구용 기증… 다주고 영원히 잠들다●지난해 3월 타계한 개그맨 김형곤씨의 유골이 그가 숨진 지 20개월이 지난 12일 안장됐다. 유족은 지난해 3월 장례식을 치른 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가톨릭대 의대에 기증했으며 그 뒤 시신은 학생들의 해부학 실습 및 교수들의 학문 연구에 쓰였다. 가톨릭대 의대 관계자는 김형곤씨는 불교 신자이지만 자신이 죽거든 시신을 가톨릭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며 시신은 실습과 연구에 소중히 쓰였으며 특히 학생들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톨릭대 의대에 시신 기증을 약속한 사람이 현재 1만5,000여명에 이르며 실제 기증은 한해에 23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이틀 전인 10일 그의 시신을 화장처리했다. 12일 유골 안장식에서 김씨의 모친과 전 부인 정도미(르 메이에르 소극장 대표)씨 등 가족은 대학 구내 성당에서 김 씨의 유골을 인계 받고 공식행사 없이 고인이 운영하던 대학로 르 메이에르 소극장을 들른 뒤 가묘가 있는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에 유골을 안치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용식, 문영미, 지영옥, 서길자씨 등 동료
일제치하에서 강제 징용됐다가 유골이 돼 고국에 돌아온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한.일 합동위령제가 29일 춘천시립 공원묘지 내 납골당에서 열렸다.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유족회(회장 홍영숙) 주관으로 열린 이날 위령제에는 재한 군인군속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이노우에 준(63) 씨 등 일본인과 희생자 유족 100여명이 참석했다.홍영숙 회장은 추모사에서 일제 강점하에서 나라 없는 죄로 일본에 끌려가 고된 노역에 시달리다 끝내 살아서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억울한 원혼들이 너무도 많다며 지난 날의 역사를 되새겨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이노우에 씨는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음에도 아직까지 정식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한.일 합동 위령제는 1994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일본의 과거사 사죄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재한 군인군속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한편 이 납골당은 故 김경석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유족회 회장이 지난 91년 일본 각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6일 국립현충원 박 전 대통령 묘역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28주기 추도식에 참석, 동생 지만씨와 분향을 하고 있다
◆국방부조사본부 유전자과 안희중.김지영.이현규 박사 저희는 수도 없이 하는 일상적 (유전자)실험인데 그 결과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었습니다. 3명의 남녀 유전자 감식 전문가가 군 수사기관에 포진, 군내 각종 범죄와 사망사고 등에서 과학수사를 이끌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방부조사본부 내 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과에 근무하고 있는 안희중(39.유전자 감식과장) 박사와 김지영(32.여.감식관) 박사, 군의관이자 의학박사인 이현규(31.감식관) 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3명은 국방부조사본부가 군 과학수사를 위해 올해 초 과학수사연구소 내에 유전자과를 설치한 것을 계기로 한 배를 타게 됐다. 안 박사는 1997년부터 지난 6월 국방부조사본부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10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약 1만 건의 유전자 감식을 한 경험이 있는 이 분야 베테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근무시절 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과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검증 작업 등에도 참여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군내 범죄 및 사망사고, 국방부가 수행하고 있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위해 군과 인연
●바뀐 딸 10개월만에 밝혀져1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약 150km(93마일) 떨어져있는 야블로노프 마을에서 리보 브로자(Libor Broza) 씨가 딸 ‘니콜라’를 바라보고 있다. 니콜라는 출생 당시 병원측의 실수로 다른 부부의 딸과 바뀐 아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DNA검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두 부부는 10개월 동안 서로 바뀐 아기를 자신들의 딸로 알고 키워왔다 ●DNA검사로 유해가 제대로 밝혀지길 기대제주 4.3 당시 최대 학살터로 증언된 제주국제공항(옛 정뜨르비행장) 남북활주로 인근에서 4.3 희생자 유해가 대량 발굴됐다. 제주 4.3연구소와 제주대로 구성된 제주 4.3희생자 유해 발굴팀은 12일 제주국제공항 4.3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설명회를 갖고 지난 8월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이뤄진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그러나 발굴된 유해들은 1972년과 1982년 등 공항확장 공사 과정와 1990년 중반 공항내 군수비축자재 구덩이를 파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훼손 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지표로부터 3.5m깊이로 파들어간 발굴현장 유해는 대부분 부분유해에 그쳤다. 희생자 유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제주국제공항 발굴터는 194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