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이곳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석비와 함께 검토해보면 이 지역은 청조 첸룽 황제 시대의 고급 관원 푸헝(傅恒)의 선영(조상의 묘)”이라고 말했다. 또한 푸헝(傅恒) 가족의 선영지는 선양시에서 황룽(皇陵) 외에 유존된 청조 시대 고급관원의 선영이라고 전했다. 푸량츄(富良秋)는 올해 10월에도 단지 공사현장 모퉁이에서 묘비를 찾았는데, 이 묘비는 높이 2m, 너비 90cm, 두께 25m로 3등분으로 절단된 묘비였다. 이것은 청조 첸룽(乾隆) 황제 때인 1778년 가을에 만든 푸헝(傅恒)의 둘째 아들 푸룽안(福隆安)의 묘비로 비문도 기록돼있다. 역사학자들은 “청조 캉시(康熙) 황제 전에는 화장하는 풍습이었으나 캉시 황제가 매장 풍습을 보급하면서 점차 매장 풍습으로 바뀌어졌다”며, “이번에 발견된 3개의 납골당은 아마도 청조 강희 황제 시대의 것”이라고 추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