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소시민의 영웅`…고이 잠드소서 천규덕은 당수, 장영철이 백드롭이라면 단연 김일은 박치기였다.흑백 TV도 흔치 않았던 1960년대 김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앉았다. 일단 풍차돌리기로 혼을 빼고, 박치기 한 방으로 마지막 일격. 순간 모여 앉은 사람들은 찐고구마를 입에 문 채 벌떡 일어났다. 승리의 함성은 온 동네를 울렸고, 힘껏 마주친 손바닥은 박치기한 김일의 머리만큼 얼얼했다. 팬티 바람의 아이들은 집에서 두꺼운 요를 깔아놓고 코브라 트위스트나 드롭킥을 연마했다.김일. 그는 어른들에게는 힘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꿈이었다.링 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왕이다라는 영화 `반칙왕`의 대사처럼 김일로 인해 고단한 세상은 링으로 변신했다. 그 위에선 우리 모두가 왕이었다. 신이 나서 입을 모아 `원, 투, 스리`를 외치면 피곤한 몸과 지친 정신은 말끔히 회복됐다. 전쟁의 잿더미 너머 희망도 보이는 듯했다.김일을 이끈 것은 역도산이었다. 1929년 전남 거금도에서 태어나 씨름으로 호남을 평정한 김일은 56년 역도산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무작정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밀입국 혐의로 체포된다. 역도산의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씨 등 전직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아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비운의 대통령’ ‘무책임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인물이다. 언론의 평가는 착잡함이 주된 흐름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23일 이라는 사설에서 “최 대통령은 왜 그리도 역사의 발목을 붙잡았는가…지도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엄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규하 그는 누구일까. 1919년 7월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 고등사범학교와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했다. 해방 이후 관직에 몸을 담은 뒤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둔 이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대통령 자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군부의 ‘꼭둑각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대통령과 함께 현대사도 ‘수렁’ 속에 빠져들었다.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의 대통령 재임 중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 언론을 ‘암흑의 시대’로 인도했던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사태 역시 그의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국의
“저 거짓의 사람들 앞장서서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슬픔을 기쁨이라고 말할 때,살얼음 벌판에서 발구르며 홀로 외치던 이여.시퍼런 칼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옳지 않은 것들 앞에 등돌리고 언제나 참의 편에운명을 건 당신어둠의 시대에 빛으로,길 없는 시대에 큰길로,언젠가는 하나로 설 이 나라에 큰 넋으로 왔다가는 이여다시는 그처럼 선한 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눈물겨운 무등의 한 활개여 큰 봉우리여.”(양성우 시인 조시中) ‘시대의 의인’이자 ‘광주의 어른’인 홍남순(洪南淳) 변호사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애도 속에 영면했다. 지난 10월14일 새벽 세상을 떠난 홍 변호사는 양심수 변론 등 인권활동과 민주화운동에 생애를 바친 ‘인권 변호사’로 통했다.1912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3년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4년 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시립 상공학교를 졸업했다.이어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마흔의 나이에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전하기도 했다.전쟁 직후 1953년부터 10여년간 광주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동했다.1963년에 평생을 살아온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자택에
[부고] 불나비 사랑 김상국씨 별세 영화 타짜의 엔딩곡 불나비’의 원곡을 부른 가수 겸 배우 김상국 씨가 15일 밤 10시20분 심장마비로 타계했다.72세.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자신의 출세작이었던 영화 ‘불나비’의 주제가 ‘불나비 사랑’으로 큰 인기를 모은 후 ‘쾌지나 칭칭나네’,‘멋쟁이 아가씨’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육군 김일병’(1969)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성격파 배우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차정화씨와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한강로3가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02)748-9444
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육신공원에서 열린 사육신 순절 제550주년을 기념한 사육신 추모제향에 집례관들이 헌작례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 오고 있다.추모제향은 사육신 현창회 주관으로 사육신 묘지 의절사에서 헌작례(전통제례의식으로 초헌, 아헌, 종헌), 추모사, 송축사, 사육신가, 일동배례 순으로 실시하게 된다. 동작구 관계자는 사육신 추모제향 행사를 세조 2년(1456) 단종 복위 사건으로 순절한 성삼문, 박팽년 선생 등의 사육신의 넋을 기리고, 나라 사랑에 대한 충절과 의로움을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와 지역문화 특화사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소천한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 조용기 목사의 부친인 각공(角空) 조두천 원로장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부음을 듣고 달려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다.조두천 원로장로는 노환으로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소천했다. 94세. 유족은 김복선 권사(93)와 조 목사를 비롯한 5남4녀다. 조두천 원로장로의 소천 소식을 접한 정계 지도자는 물론이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교계의 지도자들이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4일 김영삼·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김승규 국정원장,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김한길 의원 등 정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증경총회장 서상식 목사(동부순복음교회), 장희열 기하성 총회장과 임원들을 비롯해 유재필(순복음노원교회)·엄기호 목사(성령교회)와 고경환 목사(순복음원당교회) 등도 빈소를 찾았다.지난 1913년 경남 함안의 천석군 집
경기도 여주군은 오는 9일 여주읍 능현리 명성황후 기념관 광장에서 명성황후 111주기 추모제를 거행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이날 추모제는 경기도립예술단의 궁중정재 공연에 이어 추모사, 추념사, 추모시 낭송, 헌화 및 분향 등 순으로 진행되며 추모행사가 끝나면 청소년 무용 공연, 극단 토방의 마당극 명성황후 공연, 살풀이 추모굿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념관 광장 옆에는 안채만 남아 있던 것을 1995년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를 복원해 조성한 명성황후 생가 유적이 있다. 생가 옆에는 명성황후가 8살 때 상경해 왕비 책봉 전까지 8년간 기거하던 감고당(感古堂) 건물에 대한 이전.복원작업이 진행중이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에서 지난 28일 간암으로 별세한 고 이강산 조명감독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장례식에 참석한 영화배우 안성기, 설경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의 식당 ‘너른마당’ 앞뜰. 광개토대왕비를 그대로 본뜬 거대한 비석(높이 6.39m, 너비 1.5m, 무게 47t)을 보여주는 식당 주인 임순형(51)씨가 말했다. “딴 민족이 찬란했던 우리 역사를 빼앗아 가려고 하지, 후손들은 정작 우리 역사에 관심도 별로 없지…. 상황이 이런데, 광개토대왕님 혼백이 편히 저승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라도 모셔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임씨는 29일 오후 4시부터 비석 앞에서 ‘제2회 광개토호태왕 추모제’를 연다. 단군 제례 형식에 맞춰 의식을 올린 뒤,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계승자인 하얼빈 동포 무용가 서인숙(여·27)씨가 광개토대왕의 혼백을 기리는 살풀이춤을 춘다. 고구려 기마민족의 기상을 담은 마상(馬上)무예와 택견 시범도 펼쳐진다. 디지털 영상복원 전문가 박진호씨가 복원해 기증한 고구려 고분벽화들도 대형 현수막에 인화해서 건다. 비용은 전부 임씨 부담이다. ‘역사 지키기’와 전혀 무관하게 살던 임씨가 광개토대왕에 ‘미친’ 사연은 단순하다. 1999년 4월, 중국에 관광 갔다가 지린성 지안시의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머리털이 탁 서는’ 느낌을 받았단다. 그는 “실물이 그렇게 웅장한 느낌일
“광개토대왕님의 한을 춤사위로 풀어드릴 겁니다.” 2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의 식당 ‘너른마당’ 앞뜰. 광개토대왕비를 그대로 본뜬 거대한 비석(높이 6.39m, 너비 1.5m, 무게 47t)을 보며 식당 주인 임순형(51)씨가 말했다. “딴 민족이 찬란했던 우리 역사를 빼앗아 가려고 하지, 후손들은 정작 우리 역사에 관심도 별로 없지…. 상황이 이런데, 광개토대왕님 혼백이 편히 저승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라도 모셔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임씨는 29일 오후 4시부터 비석 앞에서 ‘제2회 광개토호태왕 추모제’를 연다. 단군 제례 형식에 맞춰 의식을 올린 뒤,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계승자인 하얼빈 동포 무용가 서인숙(여·27)씨가 광개토대왕의 혼백을 기리는 살풀이춤을 춘다. 고구려 기마민족의 기상을 담은 마상(馬上)무예와 택견 시범도 펼쳐진다. 디지털 영상복원 전문가 박진호씨가 복원해 기증한 고구려 고분벽화들도 대형 현수막에 인화해서 건다. 비용은 전부 임씨 부담이다. ‘역사 지키기’와 전혀 무관하게 살던 임씨가 광개토대왕에 ‘미친’ 사연은 단순하다. 1999년 4월, 중국에 관광 갔다가 지린성 지안시의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머리털이 탁
일제시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했던 요인들의 후손들이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 안치된 조상들을 성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통일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28일 항일 독립운동을 해 온 임정 요인들의 후손들이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조상이 안치돼 있는 애국열사릉과 재북인사묘를 성묘한다고 밝혔다. 성묘 대상은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김규식(임정 부주석), 윤기섭(의정원 의장), 조소앙(외교부장), 조완구(내무부장), 최동오(법무부장), 재북인사묘에 안치된 김상덕(문화부장), 김의한(의정원 의원), 안재홍(청년외교단), 장현식(자금조달) 등 임정에서 요직을 맡았던 9명이다.이들은 모두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90년 정부로부터 독립장, 애국장, 대통령장 등 훈·포장을 받은 인물들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임시정부 요인들의 독립정신을 추모하고 후손이 조상의 묘소를 찾는 순수한 의미를 고려해 방북을 승인했다면서 성묘 이외의 단체참배 등의 행위가 이뤄지지 않도록 각별히 강조했다고 밝혔다. ■혁명열사릉에서는 개별 성묘만 하기로 성묘단이 방문하는 애국열사릉은 혁명열사릉과 함께 북한의 국립묘지로 분류되는 곳이고 재북인사릉은 납북인사
2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중추절 동작구 실향민 합동망향제에 참석한 실향민들이 망원경을 통해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서울 동작구는 추석을 맞아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동작구협의회 주관으로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을 대상으로 합동 망향제를 개최했다.이에 동작구 관계자는 남북간 왕래의 길목이며 남북 이산 가족의 통일의지가 깃들여 있는 만배단에서 분단과 망향, 추모, 경모의 정을 기원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위로해주기 위해서 라고 밝혔다.
■ 서울시설공단(이사장 金淳直, www.sisul.or.kr)은 추석연휴(10.5 ~ 7)를 한 주 앞둔 9월 30일(土),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제2공원묘지(건물식 추모의 집)에서 장사시설 친근화 및 사전 성묘객을 위한 문화 프로젝트로 ‘제2회 서울 장사문화제’를 연다. ■ 공단은 올 추석 연휴기간 용미리 등 5개 시립묘지 및 8개 추모시설(납골당)에 13만 5천여명의 성묘객이 몰릴 것으로 추정하고 → 2005년 추석(9.17~19)성묘객은 16만명, 올해는 연휴가 분산돼 15% 정도 준 13만 5천명으로 예상 - 우리 고유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자연·환경·지역친화적인 문화 이벤트 개념의 행사로 새로운 추모문화를 모색하는 한편 - 시립묘지 등 장사시설이 명절 때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고인과 후손이 친근하게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고, - 매년 되풀이되는 명절 성묘 교통난 해소를 위한 사전 성묘 홍보 차원에서 장사문화제를 기획했다.■ 9월 30일(토)에 오후 1시부터 3만2,000여위가 안치된 용미리 제2공원묘지 건물식 추모의 집(납골당)에서 열리는 본 행사는 건물 내 어디서나 추모공연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게 중정(中庭) 앞 간이무대에서 펼쳐
경북 김천시 봉산면 봉계리 내남산 자락. 포도밭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잘 가꿔진 묘소가 나온다. 여기서 매주 토요일 오후면 바이올린 소리가 흐른다. 벌써 30년째다. 지난 23일(토) 낮 2시쯤 ‘소문’을 듣고 찾아갔을 때도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곡명(曲名)은 모르겠고, 다만 무척 애처로운 느낌이다. 저 안쪽 두 개의 봉분(封墳) 사이에 감색 양복을 입고 감빛 ‘빵모자’를 쓴 노신사 한 명이 보인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주저앉아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서울 용산(동부이촌동)에 사는 올해 여든 둘의 손성호(孫星湖)씨. 편도 3시간 넘게 걸리는 250㎞ 길을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 거름 없이 찾아 왔다. 토요일 아침 그는 서울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대전을 지나 김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봉계리 고향집에 들른다. 점심 삼아 후딱 밥 한 술 뜨고는 자전거에 낫과 담배, 상에 올릴 과자와 사탕을 챙겨 싣고 산으로 향한다. 부모 산소를 마주하고 앉아 한 주일간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바이올린을 꺼내 부모님이 좋아하던 가락들을 풀어놓는다. 대개 5∼6시간. 해가 질 때까지 머문다.철마다 좋은 꽃 보시라고 목련·백일홍·진달래·벚꽃 등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8월.오랫동안 벼르고 벼렀던 방문길에 나섰다.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와 그 운영을 도맡아 수고하시는 김환근 목사님을 알게된 지는 5년이돼간다.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인품에 반하고 하시는 일에 감동 받아 교제를 이어 왔지만 너무 오랫동안 뵙지 못한 기자를 이날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 주신다.남들이 보기에는 수입도 변변치 않은 것 같고 오히려 귀찮고 힘들어 보이는 일에 언제나 즐겁게 봉사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병원원목으로 목회를 계속하면서 이 호스피스 조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 오시면서 고생도많았으리라 그런 분주한 시간 틈틈이 호스피스의 운영 상황과 환자나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글을 모아 ‘호스피스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고 홈페이지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그 동안 수집된 글들을 모아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란 문집까지 엮어 냈다. ● 와보니 1층에 아담한 가게를 차리신 것 같은데요.....♡“네, ‘호스피스프라자’라고 간단한 의류나 소품 등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판매하여 운영비에 보태려고 개점했지요. 큰 수입은 아니고 그래도 어려운 여건하에서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가끔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