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순국장병 46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 분위기가 국가 애도기간 이틀째인 26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와 각급 군부대, 지방자치단체 등이 마련한 분향소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 인사와 기업 등 단체, 시민, 학생, 군인의 발걸음이 이어졌다.지자체가 전국 주요 도심에 설치한 시민분향소에서 추모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조국의 영해를 수호하다 희생된 장병들 영정에 헌화한 뒤 감사와 애도의 마음을 담아 묵념했다. 직장인들은 출퇴근길 혹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문했고, 학생들은 단체로 제단에 국화꽃을 올렸다.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주부들과 머리가 희끗한 60∼70대도 분향소를 찾는 등 추모의 마음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이 대통령은 오전에 청와대 수석과 선임행정관 이상 비서관 전원과 함께 서울광장을 찾아 조문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정몽준,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원은 2함대사령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순국장병의 애국정신과 넋을 기리고 유족을 위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과 대기업 경영진 등 재계 주요 인사도 분향소를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서울 등 도심 곳곳에는
▶‘772함 나와라/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칠흑의 어두움도/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우리 마흔여섯명의 대한의 아들들을/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생환시켜주소서.’ 천안함 침몰 사고 후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시를 올려 국민의 심금을 울린 동아대 의대 김덕규(55·사진) 교수는 6일 “우리들의 수병을 지켜달라는 뜻으로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천안함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고 밝힌 김 교수는 “사건 발생 후 사흘째 되는 지난달 29일 아침 인터넷 신문 기사를 통해 천안함 침몰 당시의 위치와 각각의 그림을 보던 중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생겨나더니 온몸을 휘감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내렸으며 그 자리에서 가슴을 휘젓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 써내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당시 얼굴도 모르는 수병 46명의 이름이 순식간에 가슴 속에 뛰어들어왔다”
▶국회 외통위 추모단, 첫 중국당국 승인 얻어▶안중근기념사업회 남북 공동 추모식 거행▶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26일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거행된 안 의사 추모식은 여러모로 뜻깊은 행사였다. 우선 안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던 이날 오전 11시를 전후해 뤼순 감옥 안 의사 추모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위원장 박 진) 추모단의 추모식은 중국 당국의 공식 승인을 얻은 최초의 안 의사 추모식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중국 당국은 외통위 추모단이 24-26일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哈爾濱) 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집회를 승인했으며 이날 뤼순 감옥 내 추모행사도 공식 허용했다.중국 당국은 또 하얼빈 역 내 안 의사 의거 현장을 일시적으로 통제했다. 안 의사 저격 장소임을 알리고 안 의사 순국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통제 사유 안내문도 내걸었다.26일 뤼순 감옥에서 거행된 추모식에는 수십여명의 안내원들을 배치시켜 한국의 귀빈들을 깍듯이 예우했다.이런 극진한 대우는 종전 중국 당국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안 의사 의거 장소를 기념할 만한 표지를 세우라는 우리 당국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전국서 뜨거운 추모 열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추모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26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시민 2000여명이 참석했다. 안 의사 허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에선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등 4개 단체가 주관하는 추모제가 거행됐다. ◇젊은층·인터넷 안 의사 기리자 이번 추모열기가 더 뜻깊은 이유는 젊은층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www.greatkorean.org)는 접속자가 급증하면서 이날 오전 내내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국내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안중근`이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가 하면 역사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안중근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넷 게시판이 채워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추모 행사도 줄을 이었다. 배화여고 등 서울시내 10여 개 학교에서는 1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 공적낭독과 헌시낭독, 안의사께 바치는 글, 영상물 상영, 손도장 찍기 등 다양한 추념행사를 진행했다. 부산 을숙도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1000여명이 안 의사에게 바치는 글짓기 대회를 열
국립대전현충원은 현충원내 묘역을 각 학교, 기업, 사회단체와 함께 가꾸는 1사 1묘역 가꾸기 결연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묘역 가꾸기 결연운동은 자율적이면서 책임성 있는 묘역 환경정화운동을 통해 애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돌아보고 그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데 있다.결연운동 참여를 희망하는 곳은 4월2일까지 대전현충원에 신청하면 된다. 권율정 원장은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돌아보고 숭고한 보훈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뜻 깊은 보훈행사에 많은 단체가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만5000개 마련… 내달말까지 시공 완료▶노무현재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에 조성 중인 박석(바닥돌)에 담긴 추모 문구를 21일 일부 공개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심경을 친필로 썼다.지관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은 “一念普觀三世事 無去無來亦無住(갔지만 가지 않았네! 국민을 위한 불멸의 그 열정은)”란 추모 문구를 남겼다. 한명숙 전 총리는 “당신의 뜻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사람사는세상! 당신과 늘 함께하겠습니다”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참여정부 참모들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들도 함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제 편히 쉬십시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어도 사랑할 겁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님은 바람을 거슬러 난 큰 새였습니다”라고,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나의 우상, 내 청춘의 모든 것”이라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당신의 뜨거웠던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고통도 나누려 했습니다”란 말로 애
▶무등산 문빈정사 일대 1200㎡…1주기 맞춰 착공키로▶광주 무등산 자락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추모공원 건립 사업이 본격화된다. 김대중평화센터, 노무현재단 등이 참여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기념공원 조성위원회 준비위원회’는 22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시 동구 운림동 문빈정사 부근에 추모공원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무등산은 전국에서 한해 탐방객 1천만명이 찾는 호남의 상징이고, 문빈정사는 문익환·고은·김지하·문병란 등 민주인사들이 자주 모였던 곳이다. 준비위는 두 전직 대통령이 지향했던 민주와 통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공원을 무등산 들머리에 세우기 위해 다음달 조성위를 발족한다. 지선 전 백양사 주지가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 청화 스님, 이해찬 전 국무총리,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 30여명이 고문으로 참여한다. 준비위는 오는 30일 저녁 6시 광주시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이희호씨와 권양숙씨 등을 초청한 가운데 두 전직 대통령 정신 계승과 기념공원 조성을 위한 시민대회를 연다. 또 5월17일~8월24일 100일 동안을 추모기간으로 정해 두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을 주
1910년 3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명령 기록’ 원본이 확인되고, 일제가 사형 집행 전 안 의사가 수감된 뤼순 감옥의 경계를 대폭 강화했던 내용 등을 담은 보고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22일 서울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과 보훈처 사료조사팀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 감옥을 관할하던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최근 발굴했다”고 밝혔다. 안 의사 사형집행 명령기록은 일제가 1910년 2월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지 한달 열흘 만인 3월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사형집행 명령 이틀 뒤인 3월26일 안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명령 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가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쓰여 있으며,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안중근), 나이(33년),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보훈처는 사형집행 직후 안 의사의 동생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일제가 이를 거절한 내용이 담긴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 원문도
강북구가 삼각산 애국지사묘역 성역화 사업의 붐 조성에 나섰다.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삼각산 애국지사묘역 성역화 범구민 서명 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이번 서명 운동은 성역화 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전 국민적 동참을 위해 마련 된 것으로 구는 향후 서명부를 중앙행정기관에 전달, 삼각산 애국지사묘역 성역화 사업이 정부 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서명 운동은 삼각산애국지사묘역 성역화 사업 범구민 추진위원회(위원장 최대문, 김희오)가 주도적으로 추진한다. 이들은 각종 축제나 공연, 행사에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서명운동을 벌이게 된다. 또 구청, 동주민센터 민원실을 비롯 문화정보센터 삼각산문화예술회관, 강북 웰빙 스포츠센터 등 방문 주민이 많은 곳에도 서명대가 설치되며, 각종 위원회 직능단체 체육회 등 민간단체와 학교 공동주택 사회복지시설 등 동참을 유도, 전 구민이 함께하는 운동으로 추진한다는 복안이다.아울러 4월부터는 강북구청 홈페이지(http://www.gangbuk.seoul.kr)와 삼각산 홈페이지(http://samgaksan.gangbuk.seoul.kr)에 서명창을 신설, 온라인 서명 운동도 벌이게 된다.구는 서명 목표를 10만명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6.25 60주년을 맞아 부산 유엔기념공원 묘지를 참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유엔묘지 참배는 지난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44년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17일 여의도 대신증권에서 열린 글로벌 문화경제포럼 초청 특강에서 이 대통령이 올해 6.25 60주년과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와 연관해 유엔 묘지에 가실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유엔묘지 참배는 올해 6.25 60주년을 맞아 전쟁 중 전사한 각국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정부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참전국 정상들의 유엔묘지 참배를 추진 중이다. 유엔총회에서 지명한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부산 남구에 14만5450m²(4만4000여평) 규모로 조성됐으며, 현재 6.25 전쟁에 참전한 21개국 가운데 영국 터키 등 11개국 2300구의 전사자 유해가 안장돼있다. 정부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유엔묘지 참배계획과 관련해 참전용사를 기리는 것 외에, 처음 해외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국가 원수가 참석함으로써 국격을 제고한다는 의미도 가질 수
▶“인터넷 등 다른 해법 마련” ‘맑고향기롭게’ 밝혀▶법정 스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또 사후 자신의 모든 것을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에 주도록 했다. 법정 스님이 이끌던 봉사단체 ‘맑고향기롭게’는 이날 출판사들에 법정 스님의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법정 스님의 고향 지인이자 유언집행자인 김금선씨, 맑고향기롭게 이사진은 이날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산 내용을 담은 ‘남기는 말’과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인 ‘상좌들 보아라’ 등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장은 2010년 2월24일자다.법정 스님은 ‘남기는 말’에서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썼다.맑고향기롭게는 유언 내용과 관련한 입장 발표에서 “법정 스님의 열반을 전후해 스님의 책이 품절된 사태에 대해 독자분들께 사죄한다”며 “하지만 스님의 유지를 존중해 스님의 책을 출판해온 모든 출판사에 스님의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아줄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또 “스님의 글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탑이란 말은 애초 인도의 ‘스투파’가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탑파(塔婆)라고 음역돼 전해오다가 탑으로 굳어진 것이다. 스투파는 쌓아올린다는 뜻으로 유골을 매장한 인도의 무덤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불탑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당시 인도 풍습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을 나눠 8기의 탑을 세운 것이 기원이 됐다. 이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8기의 불탑을 해체해 유골을 발굴한 뒤 전국에 8만여기의 탑을 세우고 유골을 나눠 안치했다. 탑은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신성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에게서 나왔다는 구슬 모양의 사리(舍利) 역시 크게 보면 유골이다. ‘설리라’ 또는 ‘실리라’라는 인도말이 중국어로 음역되면서 사리가 됐다. 따라서 원리상으로는 모든 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교가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곳곳에 수많은 탑이 세워졌다. 그 많은 탑들에 모두 진신사리가 모셔졌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사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화장터로 찾아가 재가 묻은 흙이나 돌을 가져왔다. 또 나중에는 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을 탑에 넣기도 했다. 석가모니만 사리가 있는
“이국땅에서 외롭게 계셨던 여러분을 고국으로 모시게 되니 흐뭇합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재일본 조선인 무연고 유골 합장지묘’라고 쓰인 작은 대리석 표석 앞에 선 구용서(82)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구(옛 시미즈시) ‘조선인 유골 안치당’에 보관돼 있던 조선인 유골 94위의 봉환을 위해 2008년 3월 결성한 ‘시미즈 조선인 유골봉환 추진위원회’(추진위)의 고문을 맡고 있다. 추진위는 지난 8일 이들의 유골을 일본에서 모셔와 10일 오전 충남 천안시의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봉환식을 열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시미즈지부 간부들로 구성된 추진위 일행 12명은 하얀 국화를 비석 위에 바치고 짧은 묵념을 올렸다. 묘역은 밤새 내린 3월 봄눈에 하얗게 덮여 있었다. 2005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강제동원위)가 출범한 뒤 정부 차원에서 일본 도쿄의 절 유텐사에 모셔진 군인·군속들의 유골을 세 차례에 걸쳐 봉환한 적은 있지만, 민간에서 기업 노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유골을 모셔온 것은 1970~80년대 대규모 유골 봉환 이후 처음이다. 유골 봉환 비용도 우리 정부의 지원 없이
10일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온 우리나라 대표 천문학자 고(故) 조경철 박사의 장례식이 유족과 조문객의 눈물 속에 치러졌다. 이날 오전 7시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한 운구행렬은 조 박사가 근무했던 연세대 교정을 한바퀴 돌고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이동했다.순복음교회 제2교육관 로비에서 오전 8시부터 40분간 진행된 발인 예배에는 유족과 조문객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시종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였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추도사에서 그는 과학자로서 시공간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영원과 무한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시라. 섭섭하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통쾌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 볼 것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조 박사가 1968년 모교인 연세대 교수로 귀국한 뒤 처음으로 받은 제자 중 한명인 오규동 전남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두달전만 해도 여전히 정열적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비통해했다. 발인예배가 끝난 뒤 조 박사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고인의 마지막 집무공간이었던 63빌딩옆 오피스텔과 용산구 자택을 거쳐 통일동산 동화 경모공원으로 향했다.심장질환을 앓던 조 박사는 지난 2일 갑
▷마지막 가시는 길 보자 절벽 비탈도 감수▷법정스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는 추모객들은 경사가 70도에 가까운 산비탈을 오르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송광사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3배를 한 스님의 법구를 따라 산속 깊은 다비장까지 함께 올라온 추모객만 수천명. 30분간 산길을 걸었던 대규모 추모 행렬은 준비된 원형의 다비장이 협소해 보이자 다비장을 둘러싸고 있는 급경사의 산비탈을 올라타기 시작했다.비탈 경사가 70도에 가까웠지만 젊은이는 물론 노인들까지도 스님의 마지막길을 보고 싶다며 나무와 풀에 의지해 위험천만한 비탈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비장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게 된 추모객들은 서 있기조차 불편한 상황에서도 거화(炬火) 의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참나무와 함께 법구가 활활 타오르자 추모객은 아!하며 탄성을 내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큰 스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화창한 봄날씨..스님 가시는 길 큰 부조다비식이 봉행되는 13일 기상이 전형적인 화창한 봄날씨를 보이자 추모객들은 날씨가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큰 부조를 했다고 반겼다. 이는 최근 지역의 날씨가 비나 눈이 오고 강풍이 부는 등 악천후가 수일째 계속되다 지난 10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