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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의 내력, 국적, 타 지역과의 비교 등

인천시립박물관, 외국인묘지 조사보고서 학술적 가치 충분

인천시립박물관이 발표한 인천외국인묘지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인천에 들어온 서양인 피장자 66명 모두 조사를 벌여 이들이 언제 들어왔으며 입국이유와 활동내역 등을 상세하게 밝혔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인천은 개항 이후 새로운 문물과 외국인의 유입 창구였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배를 타고 인천을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질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 묻힌 이들도 있었다. 인천에 들어온 외국인은 일본인이 가장 많고 다음 중국인, 그 다음으로 서양인들이었다. 1910년 조선이 일본 땅이 되면서 일본인은 당시 관점에서 외국인이 아니게 됐고, 중국인도 이방인이지만 화교라는 이름으로 이 땅의 일원이 되었다. 자의는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점차 잊혀졌다. 랜디스와 같은 선교사나 상인 타운젠트 등 몇몇 잘 알려진 인물들을 제외하고 인천에 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인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인천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천에 묻힌 서양인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게 됐다. 서양인 중에는 인천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게다가 외국인묘지에 묻힌 이들은 국적과 성명을 알 수 없는 경우를 포함해 60여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 서양인들의 묘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인천의 타자(他者)에 대한 조사·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남겼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다.


피장자들을 살펴보면 66기의 묘 가운데 국적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는 16기다. 나머지 50기 가운데 1기는 합장묘로 이곳에 묻혀 있는 사람은 67명이다. 인적사항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50명 가운데 남성이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국적은 영국 13명, 미국 12명, 독일 9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3명, 이탈리아 3명, 러시아 2명, 일본 2명이며 이밖에 캐나다 호주, 스페인, 중국인도 1명씩이다. 한국에 온 서양인 중 미국인이 가장 많았으나 이들은 대부분 선교 목적으로 온 사람들로 대부분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매장되면서 인천에 묻히지 않아 미국인 피장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직업은 개항장이자 항구 도시라는 인천의 특성에 맞게 상인과 해관원이 가장 많고 해군과 상선 선원도 있다. 이밖에 선교사는 영국 랜디스(Eli Barr Landis)와 프랑스 장-바티스트 마라발(Jean-Baptiste Maraval)과 조젭 마라발(Joseph Maraval) 등 3명이며 외교관으로는 서울주재 미국 영사였던 찰스 앨버트 허친슨(Charles Albert Hutchinson)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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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묘지에 처음 매장된 사람은 미국 상인 조지 버트 모트(George Burt Moot)로 1883년 7월 10일에 묻혔다. 가장 최근으로는 미국 군인 브래드포드 여진(Bradford E. Yergin)가 1962년 7월 17일에 안장되었다. 시기별 매장 수는 1900년 이전이 20기로 가장 많고, 1910~1945년 사이가 14기, 1900~1910년이 11기다. 광복이후 매장된 것도 5기다. 1965년 청학동으로 묘지를 이전한 후에 묻힌 사람은 없다. 인천은 개항 이후 러일전쟁 이전까지 많은 외국인이 오갔던 국제도시였지만 일본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식민도시로 도시의 성격이 변화를 반영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인천 외국인 묘지 피장자 조사에서는 그동안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하나 글로버 베넷(Hana Glover Bennett)이 사실은 오페라의 여주인공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냈다. 그녀는 영국 상사원 월터 베넷과 결혼한 후 제물포에 정착해 40여 년간 살다가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F. A. 칼리츠키는 폴란드 국적의 해군 장병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조사에서 그가 독일 국적이며 주한독일영사관에서 서기관을 역임한 후 칼리츠키 상사의 대표를 지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조지 버트 모트(J. B. Mott), 찰스 헨리 쿠퍼(C. H. cooper), 랜슬롯 잉글비 펠리(Lancelot I. Peely) 등 외국인 피장자들의 삶을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보다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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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외국인 특화묘역에서 열린 ‘청학동 외국인묘지 이전 합동안장식’에서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 묘역은 1882년 인천항 개항 후 개화기에 인천에 체류하다가 숨진 선교사·의사·군인·세관원 등 외국인 66명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2017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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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인천 외국인 묘지 조사 보고서는 서울, 전주, 광주, 대구, 창원 등지에 조성되어 있는 외국인 묘지와의 비교 조사 내용도 함께 수록했다. 인천 외국인 묘지는 도시 형성 상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이 안장되었다. 이에 반해 수도인 서울이나 전주, 광주, 대구 등 지방 도시는 선교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주로 안장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와 함께 피장자의 국적도 인천의 경우, 영국,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스페인, 호주 등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반면에 타 지역의 외국인 묘지는 한국 선교에 적극적이었던 남, 북 장로교 및 감리교 선교사 등 주로 미국 국적의 피장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국제성과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근대 인천의 도시 정체성 형성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우성 시립박물관장은"이번 조사는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간직한 외국인 묘지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학술 조사로서 의미가 있다.  또한 개별 피장자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기존에 잘못 알려졌던 인물들의 행적을 수정하고, 인천에 설치되었던 외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묘지 변천 과정을 전반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며"앞으로도 인천의 근현대 유산에 대한 지속적 조사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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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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