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옴몸 얼어 저 첫눈의 빈 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출처] 좋은 시/첫눈 -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