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떠나자 동해바다로,신화처럼 숨을쉬는 고래잡으러"

영원히 잠든 청춘작가 최인호, 장례식 엄수 분당장지에 안장



              

 

<9월 28일 오전 고(故) 최인호 작가의 장례미사가 열린 서울 중구 명동성당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추모 인파로 가득 메워 졌다. 오전 9시경부터 시작한 미사는 유가족과 지인들을 비롯해 고인의 작품을 사랑하던 독자들과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신자들까지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살아야 하겠다’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난다. 당신은 나의 먼지.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야하겠다. 나는 생명,출렁인다(2013.9.10 故 최인호)" ///

침샘암으로 투병하다가 25일 세상을 떠난 고(故) 최인호 작가의 장례미사가 28일 오전 9시께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거행됐다. 이날 열린 장례 미사는 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장례미사에는 유가족과 배우 안성기, 감독 배창호, 소설가 김연수, 피아니스트 노영심 등을 포함해 추모 인파 약 600여 명이 몰렸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고인의 장례미사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됐다. 이어 열린 고별식은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에 의해 거행됐다. 염 대교구장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최베드로를 맡기니 인간으로서의 죄를 주님의 자비로 용서하시고 하느님 나라에서 성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라며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별식이 끝나자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과 정부가 지난 27일 고인에게 추서한 은관문화훈장(2등급) 등을 앞세운 운구행렬이 이어졌다. 고인은 ‘분당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됐다.

 

                                                  미사 집전

 

9월 28일 오전 고(故) 최인호 작가의 장례미사가 열린 서울 중구 명동성당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추모 인파로 가득 메워 졌다.. 오전 9시경부터 시작한 미사는 유가족과 지인들을 비롯해 고인의 작품을 사랑하던 독자들과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신자들까지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날 오전 8시20분께 명동성당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장례 미사를 기다렸다. 100여 명의 독자와 신도들은 고인을 배웅하기 위해 일찍부터 성당을 찾아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손을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기도를 올렸다. 일부 신도는 미사포를 쓰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윽고 명동성동에 울려 퍼진 오르간 연주로 미사가 시작됐다.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은 명동성당 앞부분으로 걸어가고 그 뒤에 운구가 뒤따랐다. 신도들은 '죽음에서 생명에로'라는 위령곡을 부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였던 고인의 삶을 기렸다. 그는 "최인호 베드로 작가는 삶을 통찰하는 혜안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녹아있는 글을 쓰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 시대 최고의 작가였다"고 추모했다. 이어 "거칠고 험한 삶 속에서도 위로와 희망을 건네던 선생님을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고도했다. 강론이 끝난 후 침착함을 읽지 않던 유족은 봉헌과 함께 주기도문을 외기 시작하자 눈물을 보였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인사에 어린 손자들도 숙연하게 장례미사에 임하며 할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안성기 고별사

고별사는 천주교 신자인 배우 안성기 씨가 했다. 안 씨는 고인을 '인호 형님'이라고 부르며 "너무 서둘러 저희 곁을 떠나신 것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온 날들이 참으로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했다. 배우 안성기 씨는 고별사를 통해 고인과 나눈 대화를 상기하며 생전의 고인을 추억했다. 애통한 표정의 안씨는 "형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적이나 나쁜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니까 원수가 될 수 없으니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을 열심히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답했다"며 "형님의 말씀은 그날 이후 제 가슴을 뜨겁게 하면서 아직도 식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세상에 오고 떠나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 갑작스러운 이별이 안타깝다.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서운한 마음도 든다."고 비통해 했다.

 

 

 

 

             <추모 미사 강론>   “최인호 글 아픈 이들에 깊은 감동”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난 수요일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안에 드신 우리가 사랑하는 최인호 베드로 선생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먼저 최인호 베드로 선생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최인호(베드로) 작가님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거칠고 험한 삶 속에서도 위로와 희망을 건네시던 선생님을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최인호 베드로 작가는 삶을 통찰하는 혜안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녹아있는 글을 쓰시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으셨던 이 시대 최고의 작가셨습니다.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암 투병 중에도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옥고를 연재하시며 신앙인들에게 당신의 묵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선생의 글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휴식이었고 힘이었고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이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친 최 베드로 작가님께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소 늘 바라고 기도하신대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고인의 선종에 애도를 표해주시고 장례를 위해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최인호 선생의 선종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말이 아니라 당신의 몸과 마음 전체로 가르침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암투병을 통해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지난 월요일 나는 병실을 찾아가 선생에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선생은 병자성사를 마치고 활짝 웃으면서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신 말은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나는 그분의 평생의 사람에 대한 응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최인호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특별히 선생은 암투병중에 아픈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고귀한 정신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지난 2006년도 2월말에 제가 추기경이 된 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최인호 선생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인터뷰 중 성경구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었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베드로에게 주님이 하신 질문은 제가 1961년 처음 사제로서 서품 받을 때 상본(像本)에 적혀 있던 문구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감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베드로의 대답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할 뿐입니다. ‘아이고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활짝 웃었습니다.

이 말을 나는 최인호 선생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선생을 하느님이 사랑하십니다. 선생이 그것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러자 최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그 미소가 마치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우리는 최인호 선생님이 떠난 자리를 보며 허전함과 아쉬움이 크지만 우리가 슬픔에만 빠져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최인호 선생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을 본받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달란트를 통해 사랑과 봉사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사도행전 1,11)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사랑의 마음으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실현했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통해 우리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어 떠나도 사랑과 선행만이 남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히 우리를 사랑했던 최인호 베드로 선생을 마음속에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언젠가 영광스럽게 시 만날 것입니다.다시한번 최인호 베드로 선생처럼 훌륭한 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최 선생님이 서울주보에 쓰셨던 글을 읽으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세상을 떠난 최 베드로에게 천국 문을 열어주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받아주소서. 아멘

 

 

대표작 '별들의 고향' 한국 영화사에도 큰 족적

 침샘암 투병 끝에 25일 향년 68세로 별세한 작가 최인호는 1963년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당시 소설가로 등단하여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 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청년문화를 이끄는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 드라마로 재탄생되면서 문학계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큰 영향을 끼쳤다. 70년대 우울했던 시대상과 급속한 도시화의 후유증을 예리하게 포착해 그려냈으며 이 과정 속에서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대변했다. 특히 70년대 그의 작품이 영화로 재탄생된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 등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영화사에도 크게 기여했다. '별들의 고향'은 서울에서만 4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국적인 히트를 하게 됐다.

'별들의 고향'은 당시 톱스타 신성일과 안인숙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경아 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아저씨 추워요. 안아 주세요' 등 4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예능프로그램과 각종 드라마에서 패러디되는 영화사에 기록될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역시 히트를 쳤고, 쎄시봉 문화로 대표되는 당시 음악계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영화, 소설에 이어 음악까지 한국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친 최인호의 별세 소식에 영화, 음악, 문학 등 문화계 전반적인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는 자신의 SNS에 "소설가 최인호, 향년 68세로 별세. 천재성이 번뜩이는 작품들을 많이 쓰셨지요."라고 말했고,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는 "최인호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 아아. 암 투병 중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셔서 그 자체만으로 많은 이에게 용기가 되셨건만 삶이란 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작곡가 김형석은 "15년 전 뮤지컬 '겨울 나그네' 작업은 아직까지도 제 발라드 감성의 주제로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감성의 멘토 소설 '겨울 나그네'를 쓰신 최인호 작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시길"이라고 애도했다.

 

 

은관문화훈장 추서

 

고인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역사와 가족에 관심을 돌려 '잃어버린 왕국',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상도' 등 여러 편의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때문에 고인은 사상계 신인문학상(1967), 현대문학상 신인상(1972), 이상문학상(1982), 아시아영화제 각본상(1986), 대종상 각본상(1986), 불교출판문화상, 가톨릭문학상(1998)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투병 중에는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펴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소설가 고(故)최인호 씨에게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추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7일 "지난 50년간 활발한 창작과 문단 활동, 문학의 대중 보급 활성화를 통해 한국문학 발전에 이비지한 공적을 기리고자 훈장을 추서했다"고 밝혔다.

 

 

 <안 장>         "흙에서 온 육신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니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8일 오후 2시 30분께 경기도 성남시 메모리얼 파크에 지난 25일 타계한 고 최인호 작가의 장례행렬이 도착했다. 유가족과 동료 작가 등 70여명은 소년처럼 웃는 고인의 영정사진과 박근혜 대통령이 추서한 은관문화훈장을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봉안에 앞서 고인이 다니던 서울 서초동 성당 신도들이 추모 예절을 진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와 눈시울을 적셨다.

신도들은 "고인을 그리스도께 맡겨드리오니 마지막 날, 이 육신을 부활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며 영생을 기원했다. 이어 유가족과 지인들이 차례로 유해가 담긴 항아리를 번갈아 끌어안으며 고인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추모 예절을 마쳤다. 동료 작가들과 배우 안성기, 영화감독 배창호씨 등은 추모 예절이 끝난 뒤에도 생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 추모객은 "고인의 작품을 읽으며 마음의 평온을 얻은 은혜를 갚고자 이곳까지 왔다"며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겠다던 마지막 말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래 사냥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허 ~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 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동료작가 '박범신' 심경 밝혀

 

여전히 잠 안 오고
여전히 세상 고요하고
여전히 사랑은 아득하다.
가뭇없이 이어지는 불꽃은 갈망뿐이다.
희망이라고 말하지 못할지라도
그 불꽃이 존재의 시원인 건 틀림없다.
떠나고 남는 게 뭐 대수겠는가.
내겐 아직도 타고 있을 그이의 불꽃이 보인다.
그이는 작가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일찍이 고흐가 말한바,
걸어서 별까지 가는 일이 삶일진대.

 

                           - 박범신

 

 

< 마지막 모습 >                            "감사합니다"

 

허영엽 신부23일 오전 11시 반경 최인호 베드로 선생이 아주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곧바로 정진석 추기경께 전화를 걸어 병자성사(가톨릭에서 마지막에 병자에게 주는 성사)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추기경은 최 선생을 바로 병문안하겠다고 하셨다.

 

추기경이 도착하기 전 나는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해 병실을 지켰다. 최 선생은 살이 아주 많이 빠져 병색이 짙었고, 잘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를 보자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지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의 힘이 너무 없어 가슴이 아팠다. 드디어 오후 2시경 추기경이 병실에 도착했다. 선생은 추기경을 보자 병색이 짙은데도 미소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추기경은 최 선생의 두 손을 잡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최 선생의 눈만 쳐다봤다.

 

추기경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고 최 선생의 눈도 빨갛게 충혈됐다. 그리고 고백성사를 위해 두 사람만을 남겨둔 채 다른 이들은 병실을 나왔다. 10여 분 후 고백성사를 끝낸 최 선생의 얼굴은 한결 편해보였다.

다시 병자성사가 진행됐다. 성체는 최 선생이 목이 아파 넘길 수 없어 딸과 며느리가 대신 모셨다. 추기경은 “따님과 며느님이 선생님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에요”라고 하자 최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이 병자성자를 마친 뒤 “이제 모든 죄로부터 용서받으셨어요. 평안하세요”라고 하자 선생은 활짝 웃었다. 옆에서 딸이 “아버님이 정말 오랜만에 웃으신다”며 좋아했다. 최 선생은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든 상태임에도 자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언젠가 최 선생은 유교와 불교에 대해 소설을 썼는데 마지막으로 꼭 예수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이스라엘에 한번 가야죠”라고 한 적이 있다. 방을 나서는 추기경에게 최 선생은 다시 쇳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내가 방을 떠나면서 두 손을 잡고 “선생님, 지난번 전화에서 ‘사랑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사랑합니다”고 하자, 최 선생은 힘겹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짧은 대화가 긴 이별의 인사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까지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며 한 말씀이 귀에 맴돈다.

“감사합니다.”


                                                                 -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비서실장)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