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쓴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 목순옥 여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09년의 한해도 저물어가는 12월 23일 오후, 의정부 예술의 전당 국제회의실, 2009" 공연예술, 문학을 깨우다‘란 행사의 일환으로 시 낭송 행사가 시 낭송가이자 한국예절교육원 원장인 정옥희 원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다. 천상병 시 중에서 좋아하는 시를 골라 자유롭게 낭송하는 행사로 남녀 노소 불문하고 참여하여 색다른 감회를 자아냈다. 가장 애송되는 "귀천"외에 "막걸리", "행복" 등의 낭송을 듣는 동안 어느 중년 남자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동에 눈물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목순옥 여사는 그 맨 앞자리에서 미소로 자리를 지키며 행사를 격려하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같은 건물 찻집에서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
찻집을 운영하며 남편 천상병 시인을 보살피기에 고생도 많았으련만 7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한 모습에다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고 또 매우 활동적이었다. 처음 만나는 나의 눈에도 마치 인정 많은 이웃 할머니 같은 인상이었다. 여사는 얘기를 나누는 중에 천상병 시인이 임종할 당시를 떠올렸다. 1993년 4월 28일 오전 의정부 의료원, 그날은 유난히도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정작 발인을 하는 날에는 마치 축복이라도 받은 듯 화창한 날씨였단다. 당시 경황없이 맞은 장례식에 쓸 물건을 누구인지도 모르게 많이도 보내왔다. 그렇게 돌아가신지 어언 17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천상병 시인은 세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천진무구하고 어린애 같았던 그의 심성과 작품에서 찌든 생활의 위로를 삼고 있었으리라..... 얼마 전에는 한밤중에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 지금 우리 남편이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미안하지만 ‘귀천’ 시를 전화로라도 좀 들려 줄 수 없겠느냐고 간청하기에 전화기에다 대고 낭독해 준적도 있다고 했다. |
지금도 인사동에서 ‘귀천’이란 찻집을 운영하며 시인의 펜들과 지인들을 만나기를 일상으로 삼은 그녀와 유자차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도중,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가 화제에 올랐다. 밥은 안 먹어도 막걸리 한 사발은 꼭 마셔야 했다던 천상병 시인, 그야말로 요즘 급격히 부상하는 막걸리 붐을 그때 이미 예견한 게 아닐까 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다시 인사동 찻집으로 가봐야 하는 여사의 바쁜 일정을 생각해서 앞으로는 더 자주 만나 뵙기를 약속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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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 사면 한 홉짜리 작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 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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