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형 병원들이 장례식장 운영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한 시민이 장례식장 불법영업을 이유로 대형 병원 103곳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의료법과 건축법상 대형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 대부분이 불법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76조에 따르면 일반 주거지역에 의료시설은 설치할 수 있지만 장례식장 설치는 할 수 없다. 또 의료법 시행령 18조는 ‘의료법인은 의료업과 부대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내용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건축법 시행령상 장례식장은 그 용도가 병원과 명확히 구분돼 있는 별도 건축물이므로 병원 부속시설로 볼 수 없다”며 “비록 장례식장 영업신고를 마쳤더라도 별도의 용도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현재 전국 700여 장례식장 가운데 500여곳이 종합병원 부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주거지역에 설치돼 불법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국무조정실과 법제처에 의료법과 건축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현행 법상으로는 병원 장례식장 대부분이 불법이지만 이미 병원 장례식장 운영이 관행적으로 용인된 만큼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만성적자로 허덕이는 전국의 국·공립 의료원은 장례식장을 운영해야만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죽지 않기 위해 가는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장례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이라고 한다”며 “건강과 장수를 위해 죽음과 싸워야 하는 의료기관이 죽음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불법영업이 관행처럼 용인되고 있는 것에는 당국의 책임이 크다.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와 보건복지부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장례식장 운영은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니 최종적인 판단은 복지부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복지부 의료정책팀 관계자는 “장례식장을 병원 부속시설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선 구청도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서울 성동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한양대병원에는 병원측이 장례식장 영업신고를 하지 않아 영안실만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양대병원은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격이다. 장례문화컨설턴트 대표 김길선씨는 지난달 불법영업을 이유로 전국 대형 병원 103개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김씨는 “당국에서 책임을 회피해 결국 고소까지 하게 됐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