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위주 행정, 법만능주의, 가족애를 무시하는 비정한 사회형상 등 비록 법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평생 살을 붙이고 함께 살아온 가족조차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현실이 아직도 건재한다. 무연(無緣)의 사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가족대신장례'실천에 기여하고있는 '(사)나눔과나눔'의 최근 활동 현장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연고는 일주일, 연고자 지정은 한달?
‘ㄱ’ 님은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배우자의 아들도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ㄱ’ 님에겐 가족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설마 본인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ㄱ’ 님의 임종 후 혈연으로 묶인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 발급이 거부되었고, 그제야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구청에서 ‘가족대신장례’ 지침을 안내받았고 그렇게 어머니의 장례는 잘 마무리되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ㄱ’ 님은 끝내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빈소에 찾아온 아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그간의 일들을 쏟아냈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기 때문에 따로 서류를 증빙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정 서류가 없다면 인우보증도 가능하다기에 그걸 받아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기 전 해당 구청의 주무관과 통화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류가 아무것도 없다면 인우보증서도 보건복지부 지침에 적힌 증빙서류 중 하나라는 활동가의 말에 주무관은 “인우보증을 허위로 서면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알고 보니 주무관은 무연고로 행정처리를 하면 일주일 안에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인우보증을 통해 연고자 지정을 받는다면 3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구청에선 하루 만에 심의를 마치고 지정을 하고 있는데 왜 3달이나 소요된다고 안내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차가운 안치실에 3달이나 모실 수 없었기에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ㄱ’ 님의 장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관 속에서 부패되는게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럼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머니 장례 앞두고 큰 소리 나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제가 구청에 장례 다 끝나고 보자고 했어요. 일단 어머니 보내드리고 보자고요.”
‘ㄱ’ 님의 장례에는 아들과 며느리, 조카가 함께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무연고로 보냈다는 죄책감에 자책하며 괴로워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이자 신여성’으로 이모를 회상하던 조카는 장사법상 연고자는 아니지만, 친족으로 인정받아 유골을 반환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어쩔 수 없이 무연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마음속에 이날의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대신장례’를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
‘가족대신장례’ 지침이 생겼지만,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운영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잘못된 편견은 이렇습니다. 첫째,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른다면 범죄은닉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둘째, 재산을 노리고 장례를 치르는 파렴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셋째, 내연관계의 사람이 배우자 대신 장례를 치르려고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편견은 모두 사실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씩 반박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경찰의 조사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범죄은닉을 위한 방법으로 ‘가족대신장례’를 이용하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재산 상속과 장례를 치르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입니다.
상속은 민법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설령 연고자로 지정받아 장례를 치르더라도 고인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셋째,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고인이 무연고사망자로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연관계의 사람은 배우자가 장례를 포기했을 때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