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200여년전 사망한 진시황의 유체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을까. 중국의 사학자 궈즈쿤(郭志坤)은 최근 중국 시안(西安)의 병마용 박물관에서 개최된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진시황의 유체가 지하궁전에 완벽하게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시황제는 기원전 210년 여름에 지방순시를 나갔다 갑자기 사망, 시신의 부패가 한참 진행된 탓에 유체는 백골만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궈즈쿤은 당시 수은을 이용한 선진적인 방부 기술로 시황제의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홍콩 언론이 전했다. 당시 귀족묘에선 모두 수은 같은 방부제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고 최근 진시황릉 지하궁전에 대한 원격검측 결과 다량의 수은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 시황제가 숨질 당시 이사(李斯), 조고(趙高), 호해(胡亥) 등 고관과 당시 최고 의술을 지닌 시의 하무차(夏無且)가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시황제 시신 관리가 신속하고 용이했을 것으로 궈즈쿤은 추정했다. 중국 대륙을 처음 통일한 시황제의 무덤은 그동안 중국 역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로 남은채 숱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시황릉은 시황제 즉위 초부터 착공돼 통일 이후에는 70여만명이 동원돼 완성됐으며 내부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별과 태양을 만드는 등 천상과 지상을 모방한 지하궁전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궈즈쿤은 이와 함께 시황제 무덤의 도굴을 막기 위해 설치된 쇠뇌 등 기계식 살상장치가 2천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동으로 발사돼 사람을 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병마용의 청동병기에서 크롬화합물 산화층이 발견된 점은 당시 청동기술의 선진성을 충분히 입증하고 남는다고 궈즈쿤은 주장했다. 그는 또 진시황릉 봉토의 높이가 115m에 이르고 둘레는 2천76m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진시황릉 발굴을 둘러싸고 학술적 가치나 경제적 효과를 위해 개봉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현재 기술로는 개봉된 무덤을 보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당분간 발굴을 접어둬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