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로봇은 결코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글쓴이 : Per Bylund, 번역 : 조정환//

자동화는 사람들에게 계속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두려움의 핵심은 로봇들이 우리를 ‘대체’할 것이고, 대규모의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공 지능(AI)의 도입, 로봇을 생산해내는 로봇의 등장 등으로 인해 경제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인간의 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되었다. 생산을 로봇이 담당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먹여야 할 입만 딸린’ 아무런 가치가 없는 소비자가 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로봇을 만드는 로봇, 그리고 로봇을 수리하는 로봇을 만드는 사람은 순식간에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혁신적인 종으로서의 인류의 운명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모든 생산을 통제함으로써 우리를 통제하게 될 단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경제학이 아닌 공학

이런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한 오류는 무엇보다 경제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은 완전히 배제되고, 단지 엔지니어의 관점에서만 상상하고 서술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경제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된, 표면적으로만 합리적인 이야기이다. 생산이 기술과 공학의 관점에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닌,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표현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경제를 하나의 순환 구조로 간주해보면, 경제의 효율은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거래 비용’을 제거함으로써, ‘순환의 바퀴를 보다 빨리 돌리는 것’에 의해서 달성된다. 효율적인 경제는 공학에 달린 것이고,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보다 명확해진다 : 굉장히 세부적으로 짜인 정부의 규제들은 인간의 비이성적인 결정들이 초래할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가 적절히 사용되는 합리적인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과정의 도입을 통해, 분산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시장의 생산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적절한 사람에게 권한을 부여해, 최고의 결과를 계산해 이를 달성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고, 공학이 낭비를 줄이고, 현재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휴가가 필요 없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여가 시간을 원하지 않는 로봇들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먼 미래에 만일 로봇들이 스스로를 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고, 절약에 있다

위에서 이야기된 것들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상품의 생산이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옳을 수 있다. 우리는 매일 경제체제 안에서 적절한 상품을 적절한 방식으로 공급하기 위해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자동화의 위험에 대해 논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점을 모른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우리가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생산 분야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로봇들은, 애덤 스미스가 그의 필생의 역작에서 기술했듯, 인간의 노동보다는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수 세기에 걸쳐 기계를 발명하고, 사용해왔던 이유이다. 로봇, 자동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생산의 효율화가 아니다. 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가장 큰 효용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희소함’이라는 것과 ‘효용’이라는 개념은 둘 다 주관적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로봇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로봇이 더 효율적인 노동자들이고, 설령 더 뛰어난 기술자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것은 소비자들의 욕망을 찾아내는 기업가들의 일이다. 모든 생산이 로봇에 의해 수행된다 할지라도, 그 로봇들은 ‘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칼로리와 산소, 혹은 다른 객관적 자원들을 공급하는 것에는 성공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에 2,000칼로리’라는 단계에서 ‘사람들이 구매하고 싶어할 음식’을 찾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히 알고리즘만 바꾼다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과 가치 평가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가치를 어떻게 창출해 낼 것인가, 하는 지적 노동의 영역은, 인간 기업가들의 영역이다.

경제는 절약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절약은 단순히 물리적 자원이나 생산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도구와 재료들이 생산에는 필수적이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 – 즉, 이를 어떻게 절약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지는 인간의 일이다. 이 기본적인 전제는 자동화에 대한 논평들에서 흔히 쉽게 무시되곤 한다.

경제는 가치에 관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 관점에 비해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이 가지는 장점은,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것, 이로 인해 경제를 가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주류 경제학은 생산을 예측하고 설명할 때 가치를 빼먹어 버렸다. 따라서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에 관한 논쟁들은 경제학의 공학적 측면에만 국한되어 있다. 생산 말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희소한 가치를 활용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 경제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보다 확실히 해 보자 : 경제적으로 만드는 것은, 공학이나 물리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비가치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오해인데, 이는 불가능하다.

단순한 천연자원이 아니라, 경제적인 자원이 절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천연자원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자원에 해당하는 원유를 예로 들어보자. 상품화된 석유와 내연기관 등의 발명 전에는, 원유를 찾고, 캐는 과정은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피해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석유를 찾는다는 것은 부를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천연자원이지만 경제적인 자원 – 그러니까, 그 자원의 가치 – 은 이 자원을 활용하는 것들의 발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사실,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가치를 얻게 된 원유는 그 내연기관들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가치를 얻게 된 것이다. 원유의 가치는 그 분자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욕구 충족에 있는 것이다.

공학적인 이슈에 매몰되어 경제를 곡해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에 해당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은 그 외관 때문에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여기서 효용을 얻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가치는 언제나 소비자가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해당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동화 논쟁은 이러한 가치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생략한 것이다.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나 알고리즘이 그러한 것과 같이, 이런 관점은 문제를 보다 간단히 해결하게 도와주지만, 문제의 핵심을 보지는 못한다. 경제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봇이 우리를 노동과 노동의 어려움에서 구원한다면, 이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 대신 여가를 선택할 수 있고, 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로봇은 절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를 하는 우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어떠한 자동화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목적을 파악한 후에만 일을 할 수 있다.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는 없다.

•이 글은 FEN 사이트(www.fenkorea.kr)에 게재된 아니 ,로봇은우리를대신할 수 없다(No, Robots Cannot Replace Us)의 일부 표현을 수정한 것입니다.               [출 처  : 제3의길]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