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 고독사와 무연고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1년 고독사 사망자는 3,778명, 무연고 사망자는 3,795명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첫째, 노령인구 1천만명 시대를 맞이하여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고, 전체 가구수의 34.5%가 1인가구로서 대가족시대가 막을 내리고 핵가족시대로 변화한 사회변동에 근본원인이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이 1인가구인데, 배우자나 형제자매 등 가족이 아예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시신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경우이다. 정부에서도 2023년 3월 28일자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여 무연고자의 장례비용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소 늦었지만 바람직한 입법으로 평가한다. 문제는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사망현장에 남아있는 유품을 처리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대부분이 고독사와 중복되는데 고독사 발견 후 관계기관에 신고를
■ 고독사 위험군 약 152만 5000명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 내용 중 실태 조사 결과다. 이는 인구 대비 3%, 1인 가구 대비 21.3%가 ‘고독사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에는 3,378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2017년에 비해 40% 증가한 수치다. 이번에 발표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은 “사회적 고립 걱정 없는 촘촘한 연결 사회 조성”을 위해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 수 20% 감소와 지역 주도형 고독사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근거 기반의 고독사 예방 정책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기서는 이번 기본계획이 갖는 의미를 톺아보고자 한다. ➡️사회적 고립과 연결사회 조성도 국가의 책무 ➡️삶의 문제뿐 아니라 죽음 문제도 국가의 책무 ➡️신청주의를 넘어 적극적 발굴이 국가의 책무 ■사회적 고립과 연결사회 조성도 국가의 책무 사회적 고립과 단절의 발생 원인은 다층적이다. 가구와 가족 형태의 변화, 가족 구성원의 변화,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복잡하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스럽기만할 뿐이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황당함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은 현실성과 사회성의 다른 상황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이고 관계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된다는 편리성과 합리성을 규정해 놓은 규칙이다. 장례의 풍습은 나라와 국민성 이념과 자연의 환경 등을 통하여 발전되고 정립되어 왔다. 특히 동양권의 우리나라는 유교적 풍습과 불교적 습성이 강한 것은 불교가 약 300년 정도에 들어오면서 유교와 불교의 오랜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종교 중 천주교는 약 400년이 넘었다. 기독교는 약 130년이 조금 넘는다. 관혼상제 중 상례를 가장 중요시 했던 이유는 살아서 하는 의식인 관례와 혼례는 부족하면 다른것으로 대안을 세울 수 있고 제례는 형편이 어려우면 간소하게 하고 여유가 있을 때 풍족히 하면된다. 하지만 상례는 삶속에 마지막이며 평생의 단 한번뿐인 의식이다. 관례를 잘못하면 혼례 잘 하면 되고 혼례 잘못하면 기념일 잘하면 되고 살면서 할수 있는 기회가 많다. 상례는 다시 할수 없는 생의 마지막 의식이다. 잘못하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
나는 누구인가? 황혼이 찾아오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기에 어디로 가는가. 열심히 살아 왔는데 인생을 회고하며 삶을 돌아본다. 가지고 갈것도 없는데 많은 욕심으로 남의 것을 내것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 왔다. 현실은 인정보다 경쟁이라는 전쟁을 치루며 살아간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결국 눈뜬 소경이며 듣는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 보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며 듣는다고 다 진실이 아닌것 처럼, 인간의 삶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살아야 함에도 인간은 간곳이 없고 돈을 좇고 돈의 역활에 자기 자신을 팔아 먹는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은 한시적 삶이다. 어찌보면 기회의 시간 어찌보면 시험의 무대인 것이다. 살면서 모아논 모든 것들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가지고 갈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삶을 가지고 간다. 좋은 것은 좋은 결과를 나쁜것은 나쁜 결과를 결국 심판이란 살아온 삶을 심판 받는다는 것이다. 죄악을 지은자는 죄의 벌로 선함을 행한자는 선함의 보상이 따른다고 종교를 떠나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현실은 돈을 믿고 돈을 좇는다. 돈이 주는 보편적 가치보다 특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