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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be ambitious’ 명언에 얽힌 얘기 -박상후

선생님을 둘러싸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이야기에 잠긴 제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며 “아무쪼록 엽서 한 장이라도 좋으니 때때로 소식을 부탁하네. 항상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그럼 헤어지세, 건강하게들 지네게.”라고 말씀하시면서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는 말등에 올라타셨다. (선생님은) “Boys, be ambitious like this old man”이라고 외치시면서 채찍으로 말의 배를 후려치고는 눈으로 질퍽해진 진흙을 박차고 숲 사이로 사라져 가셨다.  (*클라크의 제자이며 언어학자인 오오시마 마사타케의 저서 클라크 선생과 그의 제자들(クラーク先生とその弟子たち)중에서)

‘Boys, be ambitious!’는 영어수업 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삿포로농학교(현재의 홋카이도 대학)에서 최초의 외국인 교감을 지낸 미국인 윌리엄 클라크가 1877년 4월 16일 삿포로 남쪽 시마마츠역에서 학생들과 작별하면서 남긴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클라크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었고 했더라도 ‘ambitious’의 정확한 뉘앙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설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오시마 마사타케가 저서에 남김으로서 정설로 굳어지게 됐다. 클라크가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ambitious in Christ’(그리스도의 신앙안에서 뜻을 세워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어로는 Boys be ambitious를 무조건 야망을 가져라라고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어번역으로는 ‘少年よ大志を抱け’ 즉 ‘소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로 돼 있다.

윌리엄 클라크는 초대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学校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의 교감으로 취임해 8개월 동안 머물면서 일본 교육과 낙농에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182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명문사립 앰허스트 대학에 입학하고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서 화학 식물학을 배웠다. 1852년에 귀국해 앰허스트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되는데 이 때 제자 가운데 일본의 도시샤 대학을 설립한 니이지마 죠가 있었다. 그러다 미국 남북전쟁에도 참전해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그러던 중 1876년 일본 메이지 정부의 초청과 제자인 니이지마 죠의 권유로 일본 홋카이도로 건너가 교편을 잡는다. 유신 후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 개척사로 사쯔마 출신인 쿠로다 키요타카(黒田 清隆)를 임명했는데 그는 미국식 시스템으로 홋카이도를 개척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클라크가 부임한 삿포로 농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족의 자제들로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홋카이도에 이주한 이들은 대부분 보신전쟁(戊辰戦争)에서 패한 동북지역의 무사집안이나 죄수, 또는 둔전병들이어서 홋카이도의 황무지 개간과 농사에는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학생들 가운데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었다. 클라크는 자신도 상당한 애주가였지만 학생들의 음주습관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술을 끊었다. 일본측은 면학 분위기와 교내질서 확립을 위해 엄격한 규율이나 학칙을 제정할 것을 권했지만 윌리엄 클라크의 교육 철학은 달랐다. 그는 규율과 단속으로는 진정한 인간을 만들 수 없다면서 ‘신사가 돼라’ (Be gentlemen 紳士たれ)는 한 마디 구호로 학칙을 대신했다.

쿠로다 키요타카는 클라크를 높이 평가하고 학생들을 위한 도덕교육을 의뢰했다. 클라크는 이에 대해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교육을 하겠다면서 학생들에게 ‘예수를 믿는 자의 계약(イエスを信ずる者の契約)’에 서명하도록 하고 이에 따른 도덕교육을 실시한다. 클라크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했고 학생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 대자연 속에서 동식물학, 광물학을 가르쳤다. 또 식사는 빵을 권장했으며 밥은 카레라이스의 형태로 허용했다.

윌리엄 클라크는 선진 기법의 낙농업을 홋카이도에 정착시켰다. 농학교 개교 초기에 개척사 관할의 임야에 농원을 개설하고 미국식 축사를 도입했다. 높은 곳에서 건초를 떨어뜨리면 소가 이를 섭취해 배출된 분뇨는 돼지가 먹는 식이다. 홋카이도의 낙농업이 발달하게 된 시초가 바로 윌리엄 클라크였던 것이다. 윌리엄 클라크가 초대 교감을 맡은 삿포로농학교는 일본 근대사에 기여한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농학교 1기생 가운데는 일본 최초의 농학박사로 홋카이도제국대학 초대 총장이 된 사토 쇼스케(佐藤昌介), 언어학자이며 종교가인 오오시마 마사타케(大島正健), 홋카이도도청의 초대 수산과장으로 송어 부화 사업 등 홋카이도의 수산업 발전에 힘쓴 이토 카즈타카(伊藤 一隆)등이 있다.

그의 재직 기간에는 없었지만 이후 영향을 받은 농학교 2기생으로는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내고 <무사도(武士道)>의 저자, 舊 5천 엔 권의 초상으로 유명한 니토베 이나조(新渡 戸稲造), 기독교 사상가로 무교회주의자, <대표적 일본인(代表的日本人)>의 저자인 우치무라 간조(内村 鑑三), 식물분포 경계선 명칭인 미야베 선의 주인공인 식물학자 미야베 킨고(宮部 金吾)등이 있다. 1877년 클라크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쿄토에 들러 도시샤영어학교를 설립한 니이지자 죠를 만나 금일봉을 주면서 삿포로농학교의 학생들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미국에 돌아간 클라크는 지인과 함께 광산을 경영하지만 파산해 빚을 떠안게 돼 불우한 상태에서 60세로 사망한다. 그는 임종 직전 목사에게 “지금 생애를 회고해 보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일본의 삿포로에서 8개월 동안 일본 청년들에게 성서를 가르친 것을 생각하면 기쁨을 느낀다”는 말을 남겼다.
[출처 :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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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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