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개신교회 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89) 목사에게도 64년을 함께 한 아내의 죽음이 힘들었나보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6월 아내 루스를 먼저 떠나보낸 것에 대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아무리 준비했다고 해도 충격”이라면서 슬픔을 털어놨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9일 보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94년 북한을 방문, 선교활동을 벌이기도 한 세계적인 부흥 전도사다. 항상 그레이엄 목사와 선교여행을 떠났던 루스 여사는 중국에서 태어나 북한 평양에서 3년간 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 64년 해로한 부인의 마지막 순간 = 그레이엄 목사가 평생의 반려자인 루스와 백년해로를 약속한 것은 1943년. 그레이엄 부부는 슬하에 딸 셋과 아들 둘 등 5명의 자녀를 뒀고, 어려울 때마다 서로 의지하면서 64년을 함께 보냈다. 루스는 그레이엄 목사가 영화 배우 나, 토크쇼 사회자 같은 화려한 자리 대신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정진할 수 있도록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다. 이 때문에 그레이엄 목사는 서슴없이 아내를 ‘솔 메이트’, ‘베스트 프렌드’라고 불렀다고 타임은 이날 전했다. 루스가 건강이 악화된 것은 87세 생일을 맞은 지난 6월14일. 온 가족이 모여 생일잔치를 가진 바로 그날 밤 페렴을 앓고 있던 루스의 건강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음식을 넣어주는 튜브없이는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문제는 다음 날 15일 안방에 설치된 병상에 루스를 옮기는 과정에서 튜브가 빠졌고, 루스가 더 이상 튜브를 원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사를 표명한 것. 의료 기기의 도움으로 삶을 연장하지 않고,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레이엄 목사는 자녀들과의 상의 끝에 진통제 외에는 어떤 음식과 물도 루스에게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내 루스는 이로부터 사흘 뒤 온 가족이 찬송가 ‘오 신실하신 나의 주여’를 부르는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그레이엄 목사는 평소 루스가 좋아하던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떠난 아내의 볼과 이마에 마지막 작별 키스를 했다. ◆ 저작 활동으로 슬픔 극복한다 = 평소 지인들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죽음의 과정은 약간 걱정된다”고 말하던 그레이엄 목사에게도 루스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집 밖에 있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오후 5시에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레이엄 목사에게 이제 그 상대가 사라진 것. 그는 “무슨 일에 몰두했다가도 불현듯 루스가 생각난다”면서 “내 유일한 대처방법은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책을 집필하고, 집을 수리하는 것도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다. 본인도 파킨슨병과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그레이엄 목사는 아내의 생명유지장치를 뗀 결정에 대해 “의료발전이 없었다면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선진 의료기술이 삶이 아니라 죽음을 연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언젠가 나도 루스 옆에 갈 것이고, 루스가 천국에서 내 자리를 맡아놓았기를 바란다”면서 “그때를 기다리면서 이 슬픔을 극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