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는 안락사 문제는 어느 한 나라, 한 시대의 상황만은 아니다. 안락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으로부터 200년전 태어나 100년 전 사망한 미국의 경제학자 겸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1883~1983)’을 이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손꼽고 있다. 그는 나이 여든에 "나는 죽을 때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존중받으며 가고 싶다" 등 내용이 담긴 ‘자연사를 위한 유언’을 글로 써놓았다. 니어링은 백 살 생일이 다가오자 죽음을 예감한 듯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3주 만에 눈을 감았다. 니어링의 아내는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듯 편안하게 갔다"고 썼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 소중한 만큼 죽음 또한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존엄한 모습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초고령시대, 노년들의 심각한 문제로 날이 갈수록 부상할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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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과학자 구달 박사의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행과 구체적 실행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작금, 고령화 시대 사람은 '언제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의 안락사 선택 최후소식을 조명해 보고 참고로 ‘스콧 니어링’의 ‘자연사를 위한 유언’ 을 소개하기로 한다.
“죽음도 자유롭게” 104세 과학자 베토벤 합창 속 눈감다
“앉아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도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안락사를 결심하고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104살의 저명한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10일(현지시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생을 마쳤다. 그는 안락사를 금지하는 호주의 법을 피해 지난 2일 스위스로 향했다. 바젤의 호텔에 묵던 그는 전날까지도 손자 3명과 바젤대학의 식물원을 돌아보고, 자신이 좋아하던 피시 앤드 칩스, 치즈 케이크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일 삶을 끝낼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면서 자신의 선택에 만족감을 표현한 그는 이날 바젤 라이프 사이클 클리닉에서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투여받고 삶을 마감했다. 안락사를 돕는 기관인 ‘이터널 스피릿’의 창립자 필립 니츠키는 트위터를 통해 “구달 박사는 평온 속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구달 박사는 1979년 정년을 맞았지만 2016년 102세가 되던 해까지 대학의 무급 명예연구원으로서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해 왔다. 지난 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삶이 즐겁지 않았다. 움직이는 게 불편해지고 시력이 나빠진 것도 일부 원인이었다. (생태·식물학자로서) 내 삶은 야외 활동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고 탄식했다. 이어 “집에서 생을 마칠 수 있었다면 모두에게 편한 일이었겠지만 그러질 못했다”며 안락사 금지를 비판하고 호주 등 다른 국가들에서 안락사 입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말도 남겼다.
구달 박사가 스스로 삶을 마친 곳은 바젤에 있는 ‘이터널 스피릿’이라는 기관이다. 매년 80여 명이 이곳을 찾는데 대부분 아프거나 고령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다. 비용이 비싸 구달 박사도 모금을 통해 2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스위스의 안락사는 의사가 처방한 치사 약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터널 스피릿측은 정맥 주사를 썼으며, 구달 박사가 직접 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열었다고 해당 기관은 밝혔다. 이터널 스피릿의 뤼디 하베거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노인이 스위스까지 먼 길을 와야 했다”며 “그가 집에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구달의 스위스 행이 알려지면서 초고령화 사회에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부여해야 하느냐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달은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라며 노인의 조력 자살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주 의료협회 등은 여전히 조력자살을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로 본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의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스콧니어링" 의 자연사를 위한 유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니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툭 트인 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기를 바란다.
나는 되도록 빨리 조용히 떠나고 싶다.
그래서 주사, 심장박동제, 음식물의 인공섭취,
산소공급, 특히 수혈을 거부한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과 위엄, 이해와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눠 주기 바란다.
죽음은 무한한 경험의 세계,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삶의 다른 일들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받아야 한다.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이일에
끼어들어선 안된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속에 넣은 다음 평범한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다른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내 아내가,
만일 아내가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灣이 바라다 보이는 우리땅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런 요청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스콧박사는 100살을 넘기고 엿새만에 죽었다. 21살 어린 스콧의 아내 헬렌(1904-1995)이 그의 유언을 그대로 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