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가족들이 모두 제사상 앞에 모여 제사를 드린다. 이윽고 위패를 모신 중앙에 홀로그램으로 작동된 영상이 떠오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다. 제주가 문안 인사를 드린다. “할아버지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 오냐, 오늘도 어김없이 다들 모였구나.“ 그때 손자가 말문을 연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 응, 그래 공부도 잘하고 있겠지?“ ”네“ ”몰라보게 많이 컸구나. 그런데 손녀는 어디 갔냐?“ ”할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아, 그렇구나. 너도 어른이 다 되었구나, 어서 결혼도 해야지.“ ”네,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요.....“ ”그렇지, 모쪼록 사람은 성실해야 하느니라. 인물, 재산 다 부족해도 근면 성실하기만 하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오는 거야, 알겠지?“ "네, 할아버지, 잘 알겠어요.” “그럼 내년에 다시 만나자, 잘들 지내거라. 나 간다.” 이윽고 홀로그램 영상이 사라진다. 홀로그램은 큰 손자 철수가 유전자, IT,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사전에 준비된 시스템의 작동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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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죽은 사람도 비교적 실감나게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시대가 눈앞에 당도했다. ‘(주)HAP(회장: 김형록)’은 그 동안 꾸준히 연구해 온 장묘관련 특허기술과 IT기술 및 유전자 정보기술, 그리고 빅데이터 기술 등을 접목하여 실제 생존자와 만나듯 고인과 만나고 단순히 추모가 아닌 실제 데이트와 유사한 추모시스템을 구사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거나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던 가상현실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인데, 어저께 광화문에서 실제로 거행된 유령집회가 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상적으로 말하면 어느 특정 고인을 특정한 날에 특정한 장소에 출현하여 특정한 유훈이나 예언을 공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 산 사람들도 골치가 아파진다. 단, 그들 유령과의 확실한 차이점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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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혼란스러운 사실이긴 하지만, 죽은 사람의 형상을 실감나게 눈에 볼 수 있다면 이제 죽은 사람이 정말 죽었는지 한 순간이나마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이다. 홀로그램 형상으로나마 산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나 일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처럼 위패,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것보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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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8시3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어둑해진 허공에 시위대가 등장했다. 일부는 피켓을 들었고 일부는 마스크를 쓴 채, 혹은 꽃을 든 채 행진을 했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 구호를 외쳤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집회의 자유는 불법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시위대가 모습을 감춘 자리에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등 30여명이 ‘집회는 인권이다’고 쓰인 현수막을 펼쳐들고 나타났다. 김 사무처장은 “교통 불편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가능한 건 우리와 같은 유령들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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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진을 하고 구호를 외친 시위대는 가로 10m, 세로 3m의 투명 스크린 위에 투사된 3차원 영상이다. 앰네스티는 지난달 25일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신청한 집회가 ‘교통 혼잡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불허되자 ‘홀로그램 집회’를 계획했다. 이어 ‘문화제’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홀로그램 집회는 국내 최초다. 세계에서는 지난해 4월 스페인 시민단체가 공공시설 근처에서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해 ‘홀로그램 포 프리덤’을 개최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경찰은 당초 “사람이 아니라 영상이기 때문에 구호를 외치더라도 문화제가 맞다. 다만 홀로그램 주변에 모여 있는 시민들이 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지르면 미신고 집회에 동조한 것으로 보고 제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함성을 지르는 시민은 없었다. 경찰과 충돌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