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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매일 아빠는 울고있어요. 나처럼 엄마를 만나고 싶은거예요


♣ 매일 아빠는 울고 있어요. 나처럼 엄마를 만나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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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4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 아들 둘만의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 뒷바라지하랴 매일 식사 준비하랴 지쳐만 갔다. 회사 일도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와 아들을 하늘에서 아내가 보고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아빠 역할과 엄마 역할을 모두 해야 했던 나는 잘 하지 못해 몇 번이나 좌절감을 느꼈다.

하루는 밤늦게 집에 돌아와 몹시 지쳐서 밥상을 차릴 기운도 없어 옷을 벗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때 ‘퍽’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라면 국물과 면발이 사방에 튀어 침대시트와 이불이 엉망이 됐다.

이불 속에 컵라면이 있었던 것이었다.

‘뭐하는 자식이야!’라며 화가 솟구친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아들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너무 화가 나서 심하게 때렸더니 울음을 터뜨린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밥은 아침에 다 먹어 버렸어요. 저녁은 유치원에서 먹었는데 아빠를 기다려도 안 와서 욕실에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만들었어요. 아빠가 가스불은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하나는 내가 먹고, 또 하나는 아빠 꺼 남겨둔 건데. 라면은 식으면 맛이 없어 아빠가 올 때까지 이불 속에 넣어 놨는데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아빠한테 말한다는 게 깜박했어요.”

아들의 말에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감추려고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크게 틀어 놓고 실컷 울었다. 잠시 마음을 진정한 뒤 아직 울고 있는 아들을 달래 상처 난 엉덩이에 약을 발라서 재웠다. 라면 국물 범벅이 된 시트와 이불을 세탁한 뒤 아들 방문을 가만히 열어 보니 아들은 엄마 사진을 손에 쥔 채 울고 있었다.

나는 선 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 역할을 더 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들과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다. 다행히 그 동안 있었던 일은 아들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았고 아들은 구김살 없이 자랐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또 다시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들이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회사를 조퇴하고 집에 돌아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택가 주위를 열심히 찾아 다녔다.

다행히, 문방구의 게임기 앞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안도의 마음도 잠시, 나는 화가 나서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무런 변명도 없이 그냥 “잘못했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나는 그날 유치원에서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뒤 아들은 유치원에서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 이후 아들은 자주 제 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천국에 있는 아내는 분명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겨울이 왔다. 거리에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아들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

어느 날 우리 동네 우체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들이 수취인이 없는 편지를 몇 통씩 우체통에 넣는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우체국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아들의 장난은 우체국 직원들에게 큰 민폐였다.

아들에게 손찌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귀가하는 데로 아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잘못했다고 하는 아들에게 화가 치밀어 다시 손찌검을 했다. 나는 우체국에 가서 아들의 편지를 받아 와서 아들 앞에 내던지면서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울면서 “그것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예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정을 억제하며 “왜 한 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엄마한테는 보냈어?”라고 물었다.

“전에는 우체통에 손이 닿지 않았는데 최근에야 겨우 손이 닿아 전에 쓴 편지도 함께 넣었다”고 대답했다.

순간 망연자실해진 나는 곧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천국에 있기 때문에 내가 쓴 편지를 태우면 천국으로 갈 수 있어”

밤에 아들을 재우고 나는 밖에 나가서 아들이 쓴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뭘 썼는지 몇 통을 꺼내어 읽어 보았다. 그 중 한 편지에 몹시 마음이 아팠다.


★엄마에게★

엄마가 보고 싶어요! 오늘 유치원에서 퍼포먼스 발표회가 있었어요. 엄마가 없어서 나는 유치원에 가지 않았어요. 아빠가 엄마를 생각하면 슬퍼할까봐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나를 찾고 있었는데, 아빠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게임기 앞에서 놀고 있는 척을 했어요. 아빠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매일 아빠는 울고 있어요.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를 만나고 싶은 거예요. 엄마 꿈에 나오세요. 만나고 싶은 사람의 사진을 가슴 위에 두고 자면 그 사람이 꿈속에 나타난다는데, 왜 엄마는 내 꿈에 나오지 않나요?’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아들에게 손찌검하지 않겠다고 나는 편지를 태우며 아내에게 다짐했다.



☞사진은 일본 'ENDING EXPO'에 출품된 작품을 각색한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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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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