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더 이상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에 따라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관련법이 입법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따라 대한민국 사회는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웰다잉(Well-Dying)'을 향한 의미있는 거보를 내디딜 수 있게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법에 대한 입법작업을 마무리한뒤 국회 법사위로 넘길 예정이다. 이 법은 또 말기암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질환 등 다른 말기질환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이 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대상 환자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dying process) 환자로 정했으며, 이같은 의학적 상태는 의사 2인 이상의 판단을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범주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의식이 살아 있을 때 환자 자신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경우다. 환자 자신의 뜻에 따라 담당 의사와 함깨 연명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나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d Directives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임종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다. 이럴 때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미리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뜻을 담당의사 2명이 확인하거나 사전의료 의향서가 없을 때는 환자 가족 2명 이상이 일치해서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진술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할 때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 추정할 수조차 없을 때다. 이럴 때도 미성년자는 법정 대리인인 친권자가 미성년 환자를 대리해 연명의료 중단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성인은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하면 환자를 대신해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법정 대리인 등 가족이 없을 때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임종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대리 결정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013년 7월 31일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확정해 복지부에 입법화를 권고했다. 생명윤리위는 이 권고안에서 ▲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에 따라 특수 연명치료 중단 여부 결정 ▲ 환자 일기장이나 가족의 증언에 따른 '추정 의사' 인정 ▲ 가족 또는 후견인의 대리 결정 등을 연명치료 중단 법률안에 담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대다수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식불명이나 살기 어려운데도 살리려고 의료행위를 하는 연명치료에 대해 65세 이상 노인에게 찬반견해를 물은 결과 찬성자는 3.9%에 그쳤다. 조사대상 88.9%에 이르는 대부분 노인은 성별과 지역(도시-농촌), 연령, 배우자 유무, 가구형태(노인독거가구, 노인부부가구, 자녀동거가구), 교육수준, 취업상태, 가구소득 등 모든 특성에 관계없이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하지만 법제도적 장치가 미비한데다 효도 사상 등에 근거해 우리나라 노인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건강보험공단 부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의 사망 전 급여이용 현황' 보고서를 보면, 노인장기요양 등급 인정을 받고 요양 중 숨진 10명 중 3명꼴로 숨지기 전 한 달 사이에 연명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