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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관련 비화

[한겨레신문도 인터뷰]아름다운 이별뒤엔 ‘엠바밍’ 있다

▶아름다운 이별 뒤엔 ‘엠바밍’ 있다 . .▷노 전 대통령 주검맡은 김일권씨
▷약품처리로 부패막아 ‘생전처럼’, 냉장고 가두는 장례문화 바꿀때
▷올해 초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40여만명이 서울 명동성당을 찾아 고인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인의 주검을 공개하는 건 한국의 장례문화에선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외국에선 그다지 낯설지 않다. 외국 영화를 보면 딸과 아들이 관에 누워 있는 어머니의 귀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속삭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고인의 주검을 말끔하게, 그리고 부패하지 않게 처리하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어 가능한 모습이다.
고인이 가족, 친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특수 처리를 하는 전문가가 ‘엠바머’다. 시신을 보존하기 위한 위생처리 작업인 ‘엠바밍’(embalming)을 업으로 하는 특수 직종이다. 최근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치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도 엠바머가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이 숨진 뒤 장례식까지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긴 7일장을 치렀음에도 더운 날씨에 주검이 변함없이 보존될 수 있게 처리한 이가 국내 최초의 엠바밍 전문가 김일권(56·사진)씨다.

■ 엠바밍이란?

주검을 마지막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엠바밍은 염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염습은 주검을 깨끗하게 닦고 옷을 입히는 정도지만 엠바밍은 장례식 동안 주검이 변하지 않도록 약품 처리를 하며 손상된 경우 복원작업까지 하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엠바밍은 부패 방지 약품을 주검에 주입하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먼저 주검을 깨끗하게 씻은 뒤 소독약으로 전신을 꼼꼼히 닦고 눈과 입을 닫는다. 그 뒤에 ‘엠바밍 플루이드’(embalming fluid)라는 방부 약품을 주입한다. 약품은 보통 겨드랑이나 허벅지 안쪽 등의 동맥에 주입한다. 동시에 정맥에서는 피를 빼낸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피가 몸 밖으로 나온다. 혈관으로 들어간 약품은 모세혈관까지 전달되고 세포와 결합해 방부 작용을 한다.

또한 사람이 죽은 뒤 푸르게 변하는 살색을 생전의 색으로 되돌리는 것도 중요한 핵심기술이다. 엠바머의 노하우가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약품을 잘 조절해 인종과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낯빛의 미묘한 차이를 맞춰 고인의 생전 낯빛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 작업이 엠바머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약품 주입이 끝나면 고인이 생전과 같은 모습을 찾도록 화장을 하고 머리 손질을 해서 마무리한다.

 
- 엠바밍전문가 김일권씨
■ 엄격한 과정 거쳐야 자격 취득…시간당 100달러 고소득 전문직
김씨는 북미 최대 상조회사 에스시아이(SCI)에서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려면 우선 해부학, 미생물학 등을 가르치는 장례서비스 학과를 졸업한 뒤 경력 10년가량의 엠바머 밑에서 2년 정도 함께 작업하는 도제식 교육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면 시급 100달러(12만7000원가량)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

김씨의 스승이었던 찰스 스튜어트가 제자 김씨에게 가장 강조한 것이 ‘고인에 대한 예절’이었다고 한다. “실습 초기에 한번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주검의 국부를 가리지 않은 채 엠바밍을 했거든요. ‘당신이 죽었을 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엠바밍하는 고인에게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원래 전기설비회사를 다녔던 김씨는 국내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분야에 2003년 뛰어들었다. 김씨가 장례 문제와 주검 처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다. 장의사의 부주의로 아버지 주검이 훼손돼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것이 계기였다. 허술한 장례 처리를 바꿔보고 싶어 고민하다가 쉰살 나이에 미국 유학에 나섰다. 5년 수련을 거쳐 작업증을 딴 김씨는 국내로 돌아와 지난해 시신 복원 및 장례식 전문업체를 차렸다.

■ 아직은 주한 외국인들 주로 요청…특별했던 노 전 대통령
5월23일, 그는 특별한 사람을 엠바밍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씨는 “당일 오후에 연락을 받았을 때 믿기지 않았지만 봉하마을에서 그분의 주검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본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은 오른쪽 발목 등 몇 군데 다친 흔적이 있었지만 마치 잠을 자듯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일단 엠바밍에 들어가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새벽 2시부터 5시 반까지 지금까지 해온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엠바밍을 했어요. 끝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푹 퍼져버렸습니다.”

아직까지 생소한 작업이어서 김씨의 고객은 모두 국내에서 숨진 외국인들이라고 한다. 김씨는 “조선시대 이후 국내 장례에서 바뀐 게 있다면 고인을 영정 뒤 병풍에 모시는 것에서 차가운 냉장고에 가둬 두는 것으로 변한 것 뿐”이라며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고인을 알던 이들이 그와 진정한 이별을 하는 기회도 놓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통 장례예절의 정신과 현대의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장례문화를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 한겨레신문 보도자료

▶미국에서 익힌 전문기술로 정성들여 엠바밍
▶국가적 대사엔 전문가와 평소의 준비가 절실

 
- 인터뷰하는 김일권 엠바머
...▶지난달 23일 서거하신 故노무현 前대통령의 국민장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고인이 서거한 부엉이바위에서부터 양산 부산대학병원, 이어서 김해 봉하마을로 옮겼다가 다시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국민장을 치르기까지 시신의 보전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시신의 위생과 방부처리(엠바밍, Embalming) 기술이 완벽하게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엠바밍 분야의 제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일권 엠바머가 고인의 장례를 의뢰받은 관계자로 부터 긴급 연락을 받은 것은 5월23일 서거 당일 오후 2시경이었다. 중요한 일로 수고 좀 해주어야겠으니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오후 4시30분 경 다시 연락이 오기를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했다고 말하고 급히 좀 와달라고 하는 전화에 그는 평소에 준비해 둔대로 장비를 체크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그 시간 만해도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학교병원으로 가야할지 김해 봉하마을로 가야할지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후 5시30분경 장비를 갖춘 차량으로 서울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일행을 중도에 만나 현지 사정을 전해 듣기로는 지금 막 고인의 시신이 양산 부산대 병원을 떠나 김해 봉하마을로 떠났다고 한다. 자연 행선지도 김해로 확정하고 계속 달렸다. 그가 김해로 들어 선 것은 자정이 가까웠다. 봉하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니 고인의 시신은 마을회관에 안치되어 병풍을 두르고 제례상을 차려놓은 채 친지들은 주위에 둘러 앉아 있었다.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이미 구름처럼 모여드는 조문객들과 취재기자들 때문에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시점은 가족장이냐 국민장이냐를 결정을 못한 시점이기도 했다.

 
- 델가도 칼리지의 "퓨너럴서비스" 합격증서
▶미국에서 익힌 전문기술로 정성들여 엠바밍◀
가족들과 친지들이 시신의 보전을 결정한 뒤 제례상을 일단 치우고 그 때까지 회관 안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경호원들이 출입구를 지키는 가운데 엠바밍(EMBALMING)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가족장이든 국민장이든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에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시신의 부패방지를 위한 보전처리가 절실하게 되었다.

엠바밍을 위한 테이블을 펼치고 장비를 정리하여 엠바밍에 착수한 것은 이튿날 오전 2시경부터였다. 정성을 들여 3시간 30분에 걸친 엠바밍을 한 후 고인의 시신을 다시 관속에 모신 상태로 있다가 입관을 마친 후 국민장 장소로 결정된 서울 경복궁으로 운구하게 되었다. 이번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점은 국가적 대사에 대비한 준비가 평소에 너무 소홀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점,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시신을 모신 자리에 대해서도 유사시에 대비한 준비가 있어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국가원수의 시신을 모신 자리이니 만치 좀 더 품격을 갖춘 자리를 마련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또 한 가지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림 없이 의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필요한 준비를 항상 갖춘 상비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의 경우 링컨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의 장례 시 엠바밍 과정을 거치듯이 상비조직과 장비 및 시설이 항상 갖추어져서 어떠한 경우에도 고인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링컨대통령의 경우 1901년 개장을 위해 35년만에 묘지를 열었는데 입회한 사람들에 의하면 링컨 대통령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하얀 얼굴 그대로 잠들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 SCI 회사 근무 당시의 명찰과 뺏지
▶국가적 대사엔 전문가와 평소의 준비가 절실◀
김일권 엠바머, 그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엠바밍 전문가다. 2003년 1월 뜻을 두고 도미 유학을 떠나 뉴올리언스 ‘델가도 칼리지’ ‘퓨너럴서비스(Funeral Service)과’에 입학하여 2006년 12월 졸업을 할 때까지 만 5년 동안 수업에 정진하여 미국 "시신보전위생처리사(Embalmer)"와 미국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 등 2개의 자격증을 땄고 졸업한 후에는 미국의 가장 유명한 장례회사인 SCI(SERVICE CORPORATION INTERNATIONAL)에 입사, 센터럴케어센터(CENTRAL CARE CENTER, 임바밍 전문 부서)에서 SCI가 운영하는 6개 장례식장의 엠바밍 처리를 도맡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처리한 것만 해도 국내외를 포함하면 500건이 될 것이다.

뜻한 바 있어 2008년 2월 귀국하여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가정의례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전국의 관련 학교에서 요청하는 특강에 응해 왔다. "인터네셔널 F.S" 란 상호로 장례서비스업을 운영하면서 수시로 한국에서 임종하는 외국인을 해당국 대사관의 의뢰를 받아 엠바밍 처리하기도 한다. 그는 자기가 필요한 곳이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장례서비스 분야에 입문한 동기는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일을 맡은 장의사의 일처리가 너무 미숙한 것을 경험하고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장례에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수송장교로 근무한 후 제대하여 25년간 전자회사에 근무하다가 이 분야에 뛰어 들게 되었다.

앞으로의 포부는 한국의 전통 의례문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아름답게 고별을 할 수 있는 뷰잉(Viewing)장례 등 선진 외국의 좋은 점을 접목하여 우리나라 장례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과 유능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번 국민장에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느낀 점은 국가적 대사라고 할 수 있는 국민장을 치르기 위해서는 전 현직 국가 원수 서거 등 특수한 상황을 대비하여 별도의 장소를 상비해 두어 언제라도 예우를 갖출 수 있어야 하겠다는 점, 그러기 위해서도 시신의 보전 처리 전문기술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국민장이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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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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