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난 9월 한 프랑스 철학자와 그의 아내가 동반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두 사람이 누운 침대 곁에는 "화장한 재를 둘이 함께 가꾼 집 마당에 뿌려달라" 는 편지가 남아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의 이름은 앙드레 고르.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한 신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자 녹색정치의 창시자였다. 둘의 자살소식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고르는 1983년 아내 도린이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리자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간병에만 매달린다. 고르는 아내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그들의 사랑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인 "D에게 보내는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학고재 펴냄)가 국내에 출간됐다. 고르는 글을 써야 하는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함께 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이 일을 해야만 했어요. 우리 두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우리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대중들을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아내만은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여든세 살의 철학자가 여든두 살의 아내에게 바친 편지는 그들의 동반 자살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최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에 드러나는 한 지성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눈물겹다. 책의 마지막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죽을 것을 결심한 듯한 귀절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그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일세.” 고르는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고백을 맺었다. 1 년 뒤인 2007년 9월 22일, 부부는 소도시 보농에서 극약을 주사해 함께 목숨을 끊었다. 시신은 이틀 뒤 발견됐다. 유언에 따라 지인들이 재를 부부가 말년을 보낸 집 뜰에 뿌렸다. [김화일님이 보내주신 이메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