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경상대학교병원 호스피스 병동 강정훈(50·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올해 초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에서 임종을 맞은 환자의 유가족 A씨가 “한 생명의 존엄성 있는 죽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호스피스 의료진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며 호스피스 병동에 1억원 지정 기부 의사를 밝혔다.
A씨는 “어떤 방식의 기부가 호스피스 팀원들에게 힘이 되는지 궁금하다. 연구비는 어떤가” 하고 강 교수에게 물었다. 이에 강 교수는 “연구비는 교수가 노력해서 따오면 된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시설개선·장비확충에 도움이 되는 지정기탁을 권했다. 환자들이 보다 편하게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A씨는 다음날 병원 계좌로 기부금을 입금했다. 그러면서 조건을 달았다. 그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절대 본인의 신상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결국 1억원을 전달하는 사진 촬영도, 기부금 전달식도 생략됐다.

A씨는 기부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조차 극구 사양했다. 강 교수는 “신분을 밝히진 않아도 기부 사실만은 공개하자”며 그를 설득했다. 강 교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도 의료진은 힘이 난다. 이번 기부도 의료진에게 자긍심과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결국 A씨는 강 교수의 설득에 익명으로 기부 사실을 밝히는 것에는 동의했다.
강 교수는 “마지막 순간이 어땠든 병원은 환자가 임종을 맞이한 곳이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아픈 공간일 수밖에 없다”며 “액수를 떠나 슬픈 상황에서 병동을 생각해준 마음이 참 감사하다”고 전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치료를 계속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힘들어 마지막을 준비해야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찾는 곳이다. 일반 환자와는 마음가짐도, 접근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12년 전 경상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이 도내 최초 ‘완화의료기관’으로 선정될 때부터 환자들을 맡아온 강 교수는 “치료의 개념을 떠나 환자가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고민한다”고 말했다. 환자뿐만 아니라 장례를 치른 가족들에게 마음의 ‘흉터’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것도 주요한 임무다.
호스피스병동 김현주(52) 수간호사는 “호스피스 병동을 특정해 기부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병동 내 의사·간호사·코디네이터 모두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했을 뿐인데 이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종종 장례를 치른 유가족이 병동을 찾아와 의료진과 함께 얼싸안고 울거나 감사의 손 편지를 전달하곤 한다”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근무하는게 심적으로 힘들지만 보호자들의 감사 인사에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윤철호 병원장은 “최근 호스피스 트렌드는 신체적 돌봄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며 “기부자의 뜻을 받들어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이 만족할 수 있는 의료 환경 및 시스템을 개선·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출처 : 경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