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미안합니다. 무연고사망자로 12월 8일 정O희 님과 유O진 님을 떠나보내며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한 사람으로 뭐라 말씀드릴게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어느 때 무연고사망자 장례보다 오늘은 고인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집니다.
12월 초인, 12월 8일 일요일 8시에 도착한 화장장은 서리로 덮여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에 내려앉은 서리와 길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서 겨울이 점점 깊어져 가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합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조계종 포교사단 여러분이 무연고 사망자 두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와서 탑다리니경을 두 분의 관위에 올리고 화장로로 봉송되기 전에 발인 염불로 두 분을 위로 하십니다.
오늘 장례는 마치 아들과 엄마의 마지막 함께 가는 길 같았습니다. 68년생 정O희 님과 91년생 유O진 님, 두 분 모두 너무 이른 나이에, 그리고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주소지가 동주민센터였습니다. 게다가 정O희 님은 아들이, 유O진 님은 아버지가 시신을 위임했습니다. 개인 사정은 있겠지만 부모가 자식의 시신을, 자식이 부모의 시신을 장례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그런 안타까운 2019년을 살고 있다는 현실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매일 같이 장례를 하기 위해 벽제 화장장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오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삶을 마감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그렇습니다. 유O진 님은 지난 11월 13일 한강대교 북단에서 한강공원을 순찰하던 직원이 발견했습니다. 사망에 이를 만한 특별한 외상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유O진 님은 1991년생,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1974년생이었습니다. 모든 태어남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의 출산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유O진 님의 짧은 삶은 어떠했을까요? 마지막 주소지가 신월동에 있는 주민센터로 정말 의지할 곳조차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강으로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을까요? 또 어머니는 언제 어떻게 삶을 마감하셨을지? 상상 밖에 할 수 없지만, 두 분 삶의 버거움이 느껴지니 마지막 유골함을 바라보는 마음이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음 편하게 그리고 아픔 없는 곳에서 엄마와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정O희 님의 마지막 주소 지 역시 대전의 한 동주민센터입니다. 흔히 말하는 '주민등록 말소자'였습니다. 그리고 국립의료원에서 간부전으로 돌아가셨으니 서울에서 지낼 곳도 없이 어렵게 살다가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돌아가신 겁니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전에 살다 삶의 마지막은 서울이셨네요. 주소지만으로도 버거운 삶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O진 님, 정O희 님이 남긴 삶의 조각들에서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영면을 바라며 산골로 뿌리기 전에 국회꽃을 뿌려드렸습니다. 유O진 님 유골함을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이 햇살 따라 그리고 뿌려드린 꽃길 따라 부디 편하게 가시기를....
[출처] [나눔장례지원]故 정O희 님,故 유O진 님 고이 잠드소서|작성자 나눔과나눔 ☞
이 기사는 무연고장례 공익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님이 게재를 허락하신 글입니다. 이름도 없는 고인의 사연많은 생애 마지막 가는 길을 지성으로 배웅하며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리는 '인간사랑 생명존중'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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