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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다운 추모와 석별은 이렇게 하는 것

<세계는지금>일본유명로큰롤가수 화려하고 성대한 고별식

'우치다 유우야(内田裕也)' 씨의 Rock'n Roll 葬, 도쿄 '아오야마 장의소(青山葬儀所)'에서. 영원한 로커에 어울리는 '라스트 스테이지'에서 마지막 고별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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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년 3월 17일 폐렴으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서거한 록(Rock) 가수 ·'우치다 유우야씨 (内田裕也さん/향년 79세)'의 고별식  'Rock'n Roll葬 '이 4월 3일 도쿄 · 아오야마 장례식장에서 화려하고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상주(喪主)는 우치다 씨의 장녀 수필가 '우치다 야야코' 씨. 
장례위원장은 우치다 씨의 생전의 희망으로 함께 업계를 개척한 '전우'인 타나베 타나베 사장이 맡았다. 조문객으로는 관계자, 팬 등 약 950 명이 참석했다. 고별식의 주관은 주식회사JA 도쿄중앙세레모니센터의 '마루'씨다.

우치다씨가 주최해 왔던 송년라이브를 표현한 제단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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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은 우치다씨 주최로 46년 간 지속된 '신년 월드Rock페스티벌'의 제1회 공연시의 미술가 '요코 오 타다노리' 씨가 제작한 포스터를 화초(花草)로 재현한 것. 제단 왼쪽에는 후지산, 오른쪽에는 피라미, 한가운데에 에베레스트가 재현되어 있다. 중앙에는 우치다 씨의 삶 그 자체라고 할 "Rock'n Roll"의 문자가 크게 표기되어 있다.

폭 16m, 높이 3.5m의 제단에는 총 15,000송이의 꽃으로 온통 장식되었다. 꽃의 종류는 국화 2,000송이, 스프레이 국화 2,500송이, 소국 1,200송이, 장미 1,500송이, 다리아 500송이 외에도, 백합, 터키 도라지, 완두콩, 색상, 거베라, 마가렛 등이다. 영정은 2009년에 출판된 '치카 하루오' 프로듀서가 인터뷰한 책 "우치다 유우야, 나는 형편없는 놈이야"에 게재된 사진을 사용.

또 '우치다 씨'의 라스트 스테이지에 어울리는 연출로서 조문객들 모두에게 그의 독특한 존재감을 느껴 주었으면 하는 뜻으로 움직이는 영정으로 LED모니터를 제단에 설치했다.  또 장내에는
'2019년 뉴이어 월드 록 페스티벌 '에서 인생 마지막 노래가 된 "특별한 오늘 밤 "등의 귀한 영상이 흘렀다.


"천국에서도 음악을 연주해 달라" 법명에 소원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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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씨의 계명은 "和響天裕 거사,  "천국에서도 계속 음악 연주를 계속해주기 바란다"고 의미를 담아 이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이 법명은 유족 '우치다'家가 속한 보리사의 광림사(光林寺) 주지에 의뢰하여 명명되었다. 보리사의 光林寺에서는 2018년 9월 우치다 씨의 아내 키키키린(樹木希林) 씨의 장례식이 거행된 바 있다.


4명의 절친에 의한 조사(弔辞)가 있었다. 조사를 봉독한 사람은 '사카이 마사아키' 씨, 영화 감독 '최양일' 씨, 록 가수 '아유카와 마코토' 씨, 미술가 '요코 오 타다 노리' 씨. 그리고 유족의 희망에 따라 가수인 AI 씨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사카이 마사아키' 씨는 "우치다 씨는 나에게 좋은 본보기이기도 했고, 나쁜 본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쁜 본보기 속에 그의 매력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해 동시대를 살아 온 동지이자 절친을 추모했다.


'우치다 야야코' 씨(딸)의 감사의 인사

오늘 바쁘신 중에 아버지 '우치다 유우야 로큰롤 葬禮'에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친족 대표로 인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아버지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합니다. 
"알 수 없다"라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함께 보낸 시간의 합계가 몇 주에도 못 미치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전에 어머니의  말씀처럼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고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순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우치다 유우야"의 근본이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아버지는 언제 폭발할 지 알 수 없는 화산이며 동시에 용암 사이에 세상물정 모르게 피어난 들꽃처럼 청정무구한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싸늘한 시신이 입관되어 뜨거운 불길에 골분으로 변했어도 여전히 내 마음은 눈물로 번지는 것조차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실감이 없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시작도 모르게 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나에게 단순한 세레모니는 아닙니다. 
아버지를 만나 보려고 모이신 한 분 한 분이 가지고 계신 아버지와의 교감이란 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분위기가 되어 이 식장에 가득 용솟음 치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개념의 '우치다 유우야'라는 인간이 절규하고, 환희하고 넘어져 침묵하고 구르며 계속된 진동을 여러분들은 확실하게 감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문해 봅니다. 
내가 유일하게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과장되게 말하면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전대 미문의 다스리기 힘든 사람이었지만 교활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위도 명예도 없지만 어떤 폭풍속에서도 달려와 주는 친구들은  있습니다.

"삶에 있어 더 이상 무엇을 원하는가 ?" 그런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만년에 자신은 아내로서의 이름 뿐으로 남편에게 아무것도 해 오지 않았다고 변명 하듯이 중얼 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혼인 관계속에서 그때 그때 바뀌는 아버지의 애인들에게 모든 형태로 감사해 왔습니다. 마치 남편은 아예 자신의 물건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처럼. 

물론, 사람은 타고난 누구의 것도 아니고 개인입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나눈 것만으로 서로의 책임을 유지하는 것도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어머니가 그 상황을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한 사람의 여성에  얽매이지 않고 심신이 자유로운 독립을 선택했습니다.

두 분을 둘러싼 주변에 지금까지 막대한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하면서
비록 늦었지만, 이 일종의 혼란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치 신기루처럼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두 사람. 
나라는 두 사람의 증인이 여기에 서서 또 그 두 사람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이 자연의 섭리도 꽤 재미있는 것입니다.

79년이라는 오랜 세월, 아버지는 여러분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그분의 마지막은 그분 답게 보내고 싶습니다. 

영원한 로커에 어울리는 라스트 스테이지 



오로지 로큰롤 한가지로  인생을 달려온 우치다 씨.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 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수많은 VIP들이 이용한 '아오야마 장의소'도 본인이 생전에 지정한 곳이다.

우치다 씨의 의지를 이어받은 유족과 함께 업계를 개척한 전우들이 한데모여 "Rock'n Roll 葬 '은 화려하고 성대한 고별식이 되었다.   (번역: 김동원)  [출처: 가마쿠라신쇼(鎌倉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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