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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우리는아름다운세상에살고있는가?

 
●독립투사의 후손이 500원짜리 빵한개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 그 날을 위하여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광복 61주년을 맞은 현재, 8월 15일 즈음에는 그 날의 기쁨과 감격을 기념하며 많은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정작 독립운동가들은 지하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들의 후손이 살아가는 비참한 모습 때문이다.

▲ 독립운동가 故 곽재기 선생 후손 "비참한 삶"

1893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故 곽재기 선생은 청남학교의 교사였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씻고자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된 비밀단체, 대동청년당에 합류하여 국내외에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그 후로도 의열단 조직,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폭파 운동 등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그의 가족들 또한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다.

늘 일본 순사들은 곽재기 선생의 집에서 잠복근무를 했고, 수시로 가족 모두를 총독부로 불러 고문을 했는데, 어린 손자 역시 그 때 받았던 전기 고문을 지금까지도 기억할 정도로 충격은 컸다. 아버지 역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셨고, 가장의 부재는 가정의 빈곤으로 이어져 그토록 바라던 광복 이후에도 빈곤은 대대로 이어졌다.

그 때의 그 어린 손자는 지금 72살의 노인이 됐다. 그리고 그 때의 가난한 삶을 떠안은 손자 곽기수(72) 할아버지는 거주할 집 한 채 없이 떠돌이 삶을 살고 있다.

▲ 500원짜리 빵을 끼니 때우는 곽기수 할아버지

종로 한 허름한 국밥 집에서 1500원 하는 국밥을 먹거나 가게에서 파는 500원 짜리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잘 곳이 없어 친구 집이나 고시원, 기도원, 찜질방, 날이 더울 때는 그냥 길바닥에서 잠을 자며 오늘은 또 어디서 잘까 고민하는 것이 그의 삶이다. 몇 벌의 옷을 담은 가방이 전 재산인 곽기수 할아버지. 그 가방을 매고 종로의 탑골공원을 찾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독립유공자 유족회 사무실에서 다른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할아버지의 일과다.

벌써 이런 생활을 한 지도 3년 째.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돕겠다며 접근한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설상가상 15년 전 아내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치료비로 진 빚 역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남은 가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면서 할아버지는 집도 잃고, 가족들과도 이별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작년에는 만성 중이염으로 고통 받다가 병원의 후원을 받아 겨우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50만 원의 남은 치료비가 없어 여기저기 손을 벌려 해결했다. 수술 후에도 아직까지 완치가 되지 않아 아직도 귓속이 따끔거린다며 할아버지는 고통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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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택 못받고 가난 대물림 받는 현실 "통탄"

"독립운동을 하면 4대, 5대까지 망한다고 하지. 친일파 후손들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아."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났고 2세 들도 80세가 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상 곽기수 할아버지는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조부가 광복 이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3대인 손자까지는 혜택이 없는 것이다. 교육의 기회도 빼앗기고,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희생에 대한 대가도 없이 가난만을 대물림 받는 후손들의 현실에 그는 통탄한다.

광복절을 앞두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누워계신 조부를 만나러 온 곽기수 할아버지. 조부를 위해 묵념을 하고, 한참을 묘비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가끔씩 울적할 때마다 이 곳에 들린다는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조부의 사명만큼은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충원 문을 나서며 오늘은 어디서 묵을지 고민하는 그의 축 처진 뒷모습이 처량 맞아 보인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에서 따뜻한 밥상을 맞아보는 것, 그것이 독립운동가 후손이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노컷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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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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