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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중국연수

중국 여성장례지도사, '행사주도, 고별사낭독'

"생명에 감사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즐겁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우리 연수단이 곧 상면할 중국의 장례지도사의 일상은 어떨까?  

그 중에도 여성장례지도사는 국내에서도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중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젊은이의 꿈과 소망, 그리고 직장인 장례식장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 인생과 생사관에 대한 확고한 태도 등 공감할만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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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시 대흥(大兴)구의장례지도사(殯葬禮儀師)'웨이얀 루(衛艷茹, Wei Yanru)'

33. 22세 때 장례업에 투신한지 11, 그동안 1만 명의 영결식을 집전했다.

 

그녀는 매일 죽음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감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살아 있는 생명이 유명을 달리할 때마다 슬프긴 하지만, 직업의 성격상 항상 냉정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엄숙하고 정중하게 영결식을 주재하면서 고인의 마지막 고별식을 원만하게 거행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이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업을 질문 받으면 그냥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장례지도사를 뱃사공에 비유하여 장래 대학동창들처럼 전직할 계획은 없다. 그녀는 장례일은 선행을 쌓는 일이며 삶과 죽음의 마지막을 잇는 일로서 그들을 또 다른 세계로 보내드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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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분에 기상, 11년 동안 근무하다.

 

그녀는 매일 630분에 직장인 북경 대흥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540분 아스팔트 도로에는아직도 가로등이 밝은데 까운을 갈아입고 작업준비를 한다. 집에서 장례식장까지 30km40분 운전하여 도착한다. 새벽이나 다름없는 630분부터 일을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정오가 되기 전에 마치기를 원한다. 아침식사 전후로 서두르는 일을 지속했다. 가장 많을 때는 오전 중 9건의 장례를 치른 적도 있다. 끝나갈 즈음에는 눈앞이 캄캄하기도 했다. 아침 식사할 여유가 전혀 없다.

 

시신을 제자리에 안치하고 위치를 확인 후 고별사를 체크하고 유가족의 자리 배치, 이어 영결식 거행, 60평방미터의 영결식장, 그녀는 고인의 오른쪽에 자리잡은 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결혼식은 사전 연습이 있지만 장례식은 단 한 번이다, 11년 동안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예를 들어 고인의 성명을 착각하는 것, 명정을 그대로 둔 채 화장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은 고인에게 사과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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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Wei Yanru는 유가족들과 대면 후 큰소리로 추도사를 낭독한다. 장시간 목을 사용하기 때문에 용각산 등을 항상 휴대하고 있다. 장례시간은 동일하지 않아 유가족과 조문객 수, 추도사의 길이 등에 따라 조정되는데 짧으면 10, 길면1시간 이상 소요될 떄도 있다.

Wei Yanru가 낭독하는 추도사는 일정한 양식은 아니고 유가족과의 대화, 고인의 연혁 등을 고려하여 추도사를 작성한후 숙독한다.

 

"고인은 마지막을 나에게 맡기고 남은 자들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의식을 마치면 그녀는 언제나 지친다. 그러나 10분의 휴식 후 거울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다음 장례에 임한다. 불편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다고 휴가를 내거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 것도 안 된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장례를 하는 것은 덕을 쌓고 선행을 하는 일이며,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생각은 단순했다. 졸업 후의 직업선택이 당면 관심사였다. 2004년 고향 지린성에서 고교입시에 실패한 후 장사민정직업기술학원의 장례학과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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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장례서비스와 관리'라는 명분아래 전국 5개 대학에만 개설되어 인재의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100%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졸업 후 장례식장에 취업하여 사무실에 사무원으로 종사할 수 있으리라는 그녀의 상상과 달리 위생, 방부, 심리학은 물론 화장로의 원리 등.. 당시에는 사실 황당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2006, 그녀가 대흥 장례식장에 실습생으로 화장로에 배치되었다. 그런 2주후 경, 열차에 치어 사망한 40대 남성의 시신을 수습하고 난 후 비로소 직업적인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그 장례식장은 베이징지역 철도사고로 인한 시신의 처리를 맡았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사를 당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직장 상사를 따라 장례식 전에 화장을 거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시신안치실 문을 열자 몇 겹의 마스크로도 막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겨 나오는 중에도 상사를 따라 고인의 신장을 드러내는 작업을 도왔는데 사실 그때 특별한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2007년 졸업한 그녀는 사교성이 있고 용모가 단정해 베이징 대흥구 장례식장 장례지도사가 되었고 책임자가 되어 크고 작은 장례를 도맡아 치렀다. 모범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앞자리에 올랐으며 북경 장례지도사 능력경시대회에서 2등상을 수상했고 북경시 장례업 종사자를 대표하기도 했다. 전국 직업능력경기 대회에서도 2등상을 수상했다.



 유가족과의 공감대 유의


장례를 치르면서 유가족 차원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유가족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요구를 가능한 한 수용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영구차에 시신과 동승한 가운데 유가족에게 정식 비용을 요구하자 중년 남성의 유가족이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돈을 요구하느냐고 거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 순간은 많이 서글펐지만 서비스업에 이만한 어려움은 있을 수 있으며 유가족의 상처 난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민정부서 일에 종사한다고 말하고 웃고 만다. 자기 직업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불쾌한 기분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40대 중년남자가 병사하자 영결식에 참석한 부모인 듯한 백발의 노부부가 "백발인이 흑발인을 배웅하는 격이군."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11000건의 장례 중 매우 드문 일이다.

 

2017년 북경 대흥 화재시 19명의 희생자를 대흥장례식장에서 맡았는데 그녀는 임무에 따라 9세 여아의 영결식을 하게 되었다. 그날 그녀는 마음이 무거워 어린 소녀의 추도사를 직접 작성하였는데 대성통곡하는 부모앞 에서는 감정을 억누르며 여느 때처럼 장례를 진행했으나 일을 마친 후 그녀는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혼자 많이 울었다.

 

다른 직업과 달리 장례지도사는 '장례는 엄숙하게' 라는 규칙이 있는데 이런 직업적 경향도 그들에게 냉정함과 자제를 요구한다. 그녀도 2007년 이래 유가족을 따라 울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생이별 장면을 보아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고 말한다. 감정이 매말랐거나 무감각해진 것이 아니라 직업과 생활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나름의 정서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유가족은 슬프겠지만 자신은 슬퍼할 수 없고 다만 장례 현장을 제대로 진행하는 일이 고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월급은 4000위안, 그러나 행복하다

 

2013, 늘 그녀를 격려하던 할아버지가 별세하셨다. 임종 2분전까지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담배를 중지하고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하시던 대로 그녀의 손으로 직접 장례를 치러야 한다. 영결식에서 그녀는 가족을 대표해 할아버지의 고난의 삶을 소개한다. 장례식 내내 사회자로서의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할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데 유의한다.

 

"할아버지는 특히 위엄이 있고 상식이 풍부했으며 제가 이 길에 들어 선 것이 할아버지의 격려에 의한 것입니다. 명절에 함께 있으면서 할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자 그녀는 마음 놓고 엉엉 울었다.

 

장례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고 딸의 사생관 교육에 더 개방적으로 임했다. 집안 어항에 물고기 한마리가 죽자 그녀는 딸을 데리고 아래층 꽃밭에 묻으며 딸에게 말한다.


"모든 생명은 마무리되는 과정이 있으니 정성껏 묻어 주어라. 내년에는 한송이 꽃으로 다시 피어 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또 어린이들의 생사관 정립을 위한 교육장소로 좋겠다고 생각하고 묘지와 장례식장을 함께 방문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장례업 종사한지 11,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임시직으로 4000위안의 월급을 받는다.

학창시절 50여명의 친구들은 최근 계속 여러 곳은 전학하며 공부를 계속하지만 그녀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또 가족을 돌봐야할 의무도 없다. 이제 30대 나이에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례업에 종사한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맡겨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직장생활중에 결혼, 출산까지 한 그녀는 자신이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녁 8시 어슴프레 북경의 밤을 숙제를 마친 딸과 함께 대낮처럼 밝은 창밖을 내다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생명에 감사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즐겁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본지는 중국장례인들과 우호친선 증진에 노력할 것이며 이 기사에 게재된  殯葬禮儀師 '웨이얀 루(衛艷茹, Wei Yanru)'와  '얀웬웬(堯雯雯, Yan Wenwen)'의 건투를 멀리서나마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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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자살률 상위권 벗어나는 법 ------이병태
라트비아가 OECD 국가가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가 줄곧 1위를 했던 것이 자살률이다.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다. 이는 가족 구성의 급격한 변화이자, 빈곤의 문제이고, 의료 실패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노인들, 특히 할아버지 자살율이 높은데 사회복지 비용이 표를 매수하는 데 쓰이느라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복지를 늘려야 하는 영역이 있다면 바로 노인 빈곤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들 하나 길러놓으면 은퇴 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농경시대의 가치관으로 살다가 정작 은퇴하고 나니 출구가 없는 노인 빈곤 문제에 복지 자원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자살율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가 정신질환의 치료 거부나 인식 부족이다. OECD국가 중에서 항우울증 치료나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이 뒤에서 두 번째로 낮다. 그래서 나는 이 분야를 의료의 실패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의료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엉터리 심리상담, 유사 상담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자격증을 남발하는 사회다. 최근 내가 한의사의 공황장해 상담과 치료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글을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