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보험 가입자에게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1단독 박주연 판사는 자살한 박모씨의 부모가 삼성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특약에 따른 재해사망보험금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나 ‘가입 후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단서조항을 둔 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가입 후 2년이 지나 자살한 경우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주는 것처럼 표시했지만 매번 “자살은 지급 대상이 아니다”며 일반보험금만을 지급했다. 보험사 측은 이 약관이 실수로 포함된 것이고 “자살자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은 어려운 상황에 몰린 사람을 자살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박씨의 부모는 2006년 8월 아들의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하면서 재해사망 시 일반보험금 외에 1억원을 별도로 주는 특약에 가입했다. 약관에는 자살은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나 ‘가입 후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단서조항이 들어 있었다. 법원은 “정신질환 자살과 보험가입 후 2년이 지난 뒤 자살을 나누는 것은 무리한 해석 방법”이라며 “가입자들이 약관을 보고 자살 시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거나 이에 동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 실태 : ‘자살 보험’ 10년간 282만건 판매… 미지급금만 2000억대
‘자살보험금’ 소송에서 법원이 고객의 손을 일단 들어 줌에 따라 유사 줄소송이 예고되는 등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관련 소비자들과 시민단체는 이미 집단소송에 들어갔거나 추가 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다. 해당 보험 상품을 판매한 10개 생명보험사는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할 예정이다. 자살보험금은 종신보험의 재해사망 특약에 따른 보험금을 의미한다. 재해사망 특약에 가입하면 보험금이 일반사망보다 2~3배 정도 많다. 문제는 2010년 표준약관이 개정되기 전 대부분의 생보사가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 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약관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7년 3월 종신보험에 가입한 A씨가 재해사망 특약에도 든 뒤 2009년 4월 자살했을 경우 보험사는 약관대로라면 일반사망보험금이 아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그동안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라며 별도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이런 관행에 법원이 이번에 제동을 건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특약 상품이 2001년부터 약 10년 동안 282만건 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수는 2647건이다. 지급 보험금 기준으로는 2179억원이다. 하지만 보험금 지급 지연에 따른 이자와 앞으로 추가 자살자가 나올 경우 지급해야 할 보험금까지 감안하면 총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보험업계의 추산이다.
자살보험금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3년 8월 금감원이 ING생명을 검사하며 자살자에 대한 미지급 보험금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당시 금감원은 ING생명이 재해사망 특약 가입자 가운데 자살로 사망한 428건 56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 이와 유사한 특약을 가진 16개 생보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지도공문을 발송했다. 다음해 7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ING생명 임직원 4명을 경징계하고, 과징금 4900만원과 기관주의 조치를 내렸다. 2010년 4월 표준약관이 개정되면서 자살 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은 사라졌지만 이전 가입자들의 보험금 지급 문제와 향후 잠재적인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가 남아 있다. 최종심에서도 자살보험금 지급이 확정되면 해당 특약에 가입한 사람의 유족들은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보험금 청구시효인 2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 미지급을 당연한 것처럼 고객에게 알려 온 만큼 청구시효를 둘러싸고는 법적인 다툼 소지가 있어 보인다. ING생명은 지난해 11월 금감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삼성·교보·한화 등 10개 생보사도 자살보험금 미지급 관련 민원에 대해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이에 맞서 금융소비자연맹은 맞소송에 들어갔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자살 방조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을 왜곡한 주장”이라며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계약의 문제이자 약속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특별 기고]자살자에게 재해사망보험금 지급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 윤준용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최근 모 생명보험사가 금융감독원의 재해사망보험특약 가입 후 2년 경과 후 자살자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 지급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생보사들도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른바 ‘자살보험금 논란’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리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살보험금 문제에 대해 금감원과 보험계약자들은 보험회사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6다55005)과 자살면책제한조항이 재해사망특약의 약관상 명백히 명시돼 있어 ‘작성자불이익의 원칙’에 근거해 보험회사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유로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 상법 659조 제1항에 반해 효력이 없는 조항이다. 상법 제659조 제1항은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피보험자가 고의에 의한 보험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보험계약상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우(자살 등)에도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보험계약이 보험금 취득 등 부당한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09다97772 판결 참조)
둘째, 고객의 평균적인 이해가능성의 관점에서 봐야한다. 보험약관상 면책제한조항은 ‘보험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그 보험금 지급책임의 면책 및 그 제한을 다룬 것인데, 재해사망특약상 ‘보험금지급기준표’와 ‘재해분류표’에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를 보험사고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재해’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정하고 고의적인 자해의 경우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명기하고 있다. 이처럼 일반적인 자살의 경우는 우연성과 외래성이 결여돼 ‘재해’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므로 처음부터 재해사망특약의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자살이 재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평균적인 고객이라면 보험계약 당시 당연히 이해하고 있던 내용으로, 금감원 감사에서 문제되기 이전에도 2년경과 후 자살의 경우 일반사망보험금 외에 특별히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한다든지, 재해사망보험금 미지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법원 역시 ‘평균적인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놓고 볼 때 자살에 대해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고 이해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 2008다81633판결 참조)
셋째, 작성자불이익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보험계약은 보통 약관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보험계약을 해석할 때 작성자불이익 원칙이 고려되는 경우가 많은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 제5조 제2항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약관규제법 제5조 제1항은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해 약관해석에 있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해석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작성자불이익 원칙은 약관내용의 해석에 있어 1차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라기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해석의 결과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그 의미가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보충적인 해석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본 사안에서 자살면책제한조항은 그 조항 자체의 의미가 명백한 경우로서 작성자불이익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보험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6다55005 판결)의 확대적용은 부당하다. 보험계약자측은 보험회사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6다55005)이 본 사안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주계약에서 ‘교통재해로 인한 사망 또는 장해’를 보장하고 재해사망특약에서는 재해를 보장하는 경우에 대한 사안으로서 비록 재해사망특약에서 자살면책제한조항을 그대로 명시한 바 있지만 재해사망특약 뿐 아니라 주계약 자체도 ‘재해’를 담보하는 사안이다. 이는 2년 경과 후의 자살에 대해 보험금 지급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피보험자가 주계약에 의한 보험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특수성과 유족보호의 필요성을 고려해 보험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로, 이를 주계약이 일반사망, 특약이 재해사망을 보장하는 본 사안에까지 확대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험회사가 자살면책제한규정이 재해사망특약의 약관에 명시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자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순수하게 보험의 일반원리와 속성, 그리고 다른 고객들의 이해관계와 평균인의 이해가능성에 명백히 반한다고 생각한다. 보험이 자살자에 대해 특별하게 다른 고객들보다 이익을 주거나 보상을 해 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이는 최근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의 현실과 오히려 자살을 조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점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다. [한국보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