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조사에서 특히 관심을 끈 유물은 흙으로 만든 토제벼루 50여점이다. 연구소는 월성 주변에 있는 동궁과 월지, 분황사에서 나온 토제벼루보다 양이 훨씬 많다는 점으로 미뤄 이번에 발굴된 건물지군이 문서를 작성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월성 C지구에서는 ‘정도’(井桃),‘전인’(典人),‘본’(本),‘동궁’(東宮)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와 암막새 등 기와류, 다량의 토기도 출토됐다. 전인은 궁궐 부속 관청인 와기전(기와나 그릇을 굽던 관아)에 속한 실무자, 본은 신라 정치체제인 육부 중 하나인 ‘본피부’(本彼部), 동궁은 태자가 머무는 궁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또 연구소는 탐색조사를 통해 월성 C지구에 통일신라시대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 2개와 신라시대 문화층 5개가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보된 유물 분석자료를 보면 월성은 4~9세기에 왕궁 또는 관련 시설이 있었으며, 신라가 멸망한 뒤에는 거의 사람이살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