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산업이 위기에 봉착한 조짐이다. 입춘(立春)을 하루 앞둔 3일 경남 김해시 영남화훼공판장에는 '2016년 졸업예정일'이라고 쓴 인쇄물이 곳곳에 놓여 눈길을 끌었다. 이 인쇄물에는 경남, 부산, 대구, 경북, 서울, 경기 지역 대학과 초·중·고교 졸업일자가 상세하게 담겼다. 졸업 시즌 안내문으로 만든 것인데 이상하리만큼 상인들은 관심이 없었다. 상인들은 "화훼업계에서 졸업 시즌 특수는 이미 없어졌다"며 울상이다. 이날 공판장 경매에 올려진 꽃 물량도 3만여 단으로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졸업 시즌에도 출하 물량이 많지 않은 것은 대표 졸업선물로 여기던 생화로 만든 꽃다발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3일 오전 경남 창원지역 한 고교 졸업식장 입구에는 생화보다 가격이 훨씬 더 싸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조화가 90%를 차지했다. 그나마 조화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51) 씨는 "금방 시들어버리는 생화보다 사탕이나 초콜릿 등으로 예쁘게 꾸민 조화가 훨씬 잘 팔린다"고 말했다. 생화는 '구색'이 돼 버렸다. 최근에는 친환경 비누에다 향기 나는 조화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졸업 선물 문화도 달라졌다. 꽃보다는 용돈이나 노트북, 스마트폰 선물이 더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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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소비문화가 급감하면서 화훼농가 시름도 깊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일본 수출도 극심한 엔저 현상으로 지난해부터 끊어졌다. 유달리 춥고 긴 겨울이었지만 지난해 7월부터 난방용 면세 경유 공급이 중단되면서 생산 비용 부담도 커졌다. 중국산 꽃 수입도 화훼농가에 큰 타격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선 중국산 꽃 수입이 늘면서 국내 화훼 생산 기반은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김해지역 화훼 농민 이모(49) 씨는 "도매시장에서 국내산 장미 한단 값이 9천~1만원이면 중국산은 3천~4천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꽃 소비가 안 되는 상황에서 상인들이 앞다퉈 수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산 꽃 품질도 요즘엔 국산 못지않다. 시장 기반을 잃은 국내 화훼농가들이 재배기술을 중국에 전수해 주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3단 화환 재사용 폐단 등 화훼 업계 자정 노력도 절실하다. 꽃집 상인은 "원가가 6만원인 3단 화환을 5만~5만5천원에 판매한다는 광고는 일부 꽃을 조화로 사용하고 재사용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영남화훼원예농협 박원철 과장은 "국내 생산과 소비 시장 왜곡은 결국 국내 화훼산업 붕괴로 이어진다"며 "경쟁력을 갖춘 생산과 바람직한 소비문화 회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