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ㆍ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버산업에 전성기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이달 발표한 고용시장 전망보고서에서 2014~2024년 서비스업이 930만개 일자리를 창출해 전체 신규 일자리의 94.6%를 차지하며 그 가운데 헬스케어와 사회복지 부문은 380만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 혜택을 받는 이 두 부문이 고용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 공공의료보험을 담당하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헬스케어 지출은 전년보다 5.3% 늘어난 3조310억 달러(약 3575조원)에 달했다. CMS는 베이비부머들의 고령층 편입이 헬스케어 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지출이 6187억 달러로 5.5% 증가했다. 미국 의료보건 전문 학술지 헬스어페어스는 오는 2024년까지 10년간 헬스케어 지출이 연평균 5.8% 증가해 5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헬스케어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의 17.5%에서 10년 후 19.6%로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은 물론 고령화가 급가속화하는 중국에서도 실버산업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노령업무위원회의 사무국의 우위샤오 부주임은 “중국은 현재 60세 이상 노인이 2억1200만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60~65세가 3분의 1을 차지한다”며 “이들 새로운 노인세대는 더 높은 서비스를 향유할 능력과 수요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을 위한 금융서비스와 헬스케어, 가사도우미, 문화산업 등이 새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최대 요양시설 전문업체 니치이갓칸의 데라다 아키히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노인 간병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지만 그 규모는 2조3000억 엔(약 22조원)에 이른다”며 “현지에서 약 3500만명의 노인이 간병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업체는 중국에서 20개에 육박하는 가사대행 기업을 인수해 내년에는 방문 간호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 2006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실버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말 저출산, 고령화 대처를 위해 임금인상과 보육, 양로시설 확대 등 ‘일억 총활약 사회(일본 인구 전체가 활약하는 사회)’를 위한 긴급대책을 내놓았다. 고령층의 소비와 생산활동을 독려하는 것이 대책 핵심 중의 하나다. 연금을 적게 받는 고령자에게 매월 3만 엔 정도의 보조금이 지급되며 고용보험 적용 연령을 높여 65세 이상 고령자도 신규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 노인들이 젊은층보다 소비 지출을 덜 한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일본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체 소비지출에서 60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었다. 이는 2000년의 약 30%에서 오른 것이다. 실버산업에는 경계도 없다. 헬스케어와 노인요양 같은 전통적인 분야는 물론 IT와 건설, 자동차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실버산업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업체 NTT도코모는 고객의 약 4분의 1이 60세 이상 노인인 것을 겨냥해 좀 더 큰 아이콘과 글씨를 갖추고 이메일과 사진을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노인 전용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다. 후지소프트는 지난 2010년 인공지능 대화형 간병로봇 ‘파르로’를 개발했다. 많은 요양시설이 1대에 70만 엔 가격인 파르로를 구매하고 있다. 끝말잇기나 퀴즈 등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해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물론 간병 인력 부족 문제도 해소한다.
자동차 부문도 노인 수요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평가다. 미국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지난 2003~2013년에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는 820만명으로 29% 증가했다. 그중 84세 이상 운전자는 350만명으로 43% 급증했다. 반면 10대들은 수입이 없거나 차를 소유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아 20세 미만 운전면허 보유자는 같은 기간 3% 감소했다. 벤 윈터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제품기획 부사장은 “노인 고객들은 손자를 태우기 위한 미니밴, 또는 크라이슬러300, 닷지 차저 등 대형 세단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는 이전보다 노인 고객을 훨씬 많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후방 카메라 등 각종 안전기술 발달이 노인 운전자들의 증가를 이끌고 있다고 풀이했다. 일본 도쿄 소재 JP모건증권의 제스퍼 콜 주식 리서치 대표는 “노인들은 과거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한다”며 “이런 지출은 젊은층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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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들이 해외 M&A에 적극적인 이유는 고령화, 중국 때문
고령화와 여유 자금,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서의 인수 합병(M&A)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최근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보험 업계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에만 보험 회사들이 성사시킨 해외 M&A는 약 250억달러로 전체의 30%에 이르고 있다. 엔저 현상과 아베노믹스로 자금 사정이 넉넉해진 기업들도 해외 기업 인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내수시장 축소에 따른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은행이나 유통, 소비재 분야에서도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요시히코 야노 골드만삭스의 M&A 부문장은 “총자산이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정도인 기업도 해외 시장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8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 시기 이후 다시 일본 기업들이 ‘구매자’로 나섰다”며 “중국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전 세계 기업 인수 합병(M&A) 규모는 2007년 이후 최대인 4조6000억달러(약 5413조원)를 기록했다. 규모로는 제약회사 화이자가 엘레간을 1837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