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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장례문화

삶과 죽음, 언제나 강건너 이웃

영국 스톤헨지 부근서 거대한 마을 유적 발견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신석기시대 유적 스톤헨지 부근에서 이 거석 구조물을 건설한 일꾼들, 또는 축제 참가자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는 큰 마을 유적이 발견됐다고 BBC 뉴스를 비롯한 언론들이 31일 일제히 보도했다. 스톤헨지가 세워진 것과 같은 시기인 기원전 2천600~2천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마을은 수백명이 살 수 있는 규모로 영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마을로는 가장 큰 것이며 스톤헨지가 대대적인 종교의식용 단지의 일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셰필드 대학의 마이크 파커 피어슨 교수 등 고고학 연구진은 스톤헨지에서 3㎞ 떨어진 더링턴 월스에서 발굴된 이 마을 유적에서 지금까지 8채의 집터가 발견됐으며 다른 흔적들로 미루어 최소한 100채의 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방사능탄소 연대추정 결과 이 마을은 스톤헨지와 똑같은 시기에 조성됐음이 확인됐다.

피어슨 교수는 나무로 지어진 5㎡ 정도의 작은 집들의 바닥은 진흙이었고 가운데 화로가 있었으며 바닥에는 4천600년 전의 동물 뼈 등 음식 흔적, 도기 파편 등 온갖 종류의 유물들이 널려 있었다면서 “동물 뼈와 부싯돌 등 유물의 양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지저분한 발굴현장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유적에서는 다른 마을처럼 일상생활의 흔적인 동물가죽 가공 도구나 곡물 가공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돼지 이빨을 보면 도축이 봄철을 뺀 9달 동안에만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피어슨 교수는 이 곳에서 한겨울에 축제가 열려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반쯤 뜯어먹다 버린 동물 뼈와 엄청난 양의 돼지고기, 사과 등 음식 찌꺼기의 흔적으로 미루어 “최초의 자유로운 축제가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대한 나무 기둥 등 목재를 사용해 지어진 더링턴 월스 마을은 지금은 사라진 목제 구조물, 즉 스톤헨지와 같은 방향으로 배치된 우드 헨지 둘레에 동심원을 이루고 있으며 큰 길이 동지 때의 일출 방향과 일치해 큰 길이 동지 때 일몰 방향과 일치하는 스톤헨지와 짝을 이루며 에이번 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톤 헨지에서는 약 250군데의 화장 장소가 발견돼 장례지로 추정되지만 이 마을의 집 터에서는 상자형 침대 바닥과 나무 서랍장 또는 찬장 바닥의 테두리가 발견돼 산 사람의 생활 근거지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골짜기 위쪽에서는 최근 맨체스터 대학 줄리언 토머스교수 팀이 나무 기둥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두 채의 신석기 시대 가옥을 발견했는데 이 집들은 아랫마을과 달리 쓰레기가 하나도 없이 깨끗해 신성한 장소로 사용됐거나 마을 지도자나 지혜로운 여성, 족장, 또는 사제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어슨 교수는 더링턴 마을은 삶을 즐기는 축제의 장소이자 죽은 이를 에이번 강에 실어 내세로 보내는 장소였을 것이며 스톤헨지는 장례의식, 또는 일부 망자의 무덤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스톤헨지는 영국의 솔즈베리 평원 한 중앙에 있다. 즉 그 근방에는 그렇게 거대한 암석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무거운 암석은 50톤이나 되니 그것을 운반하는데엔 적지않은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마법이니 외계인이니 하지만...굴림판을 이용하면 약 100여명의 인력으로 충분히 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100여톤에 달하는 고인돌도 옮긴 경우도 있어, 옮긴 그 자체가 그렇게 신비하지는 않다.

우선 스톤헨지는 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최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조성되어, 수십번의 수정과 추가를 시켜 기원전 1000년경까지 조성되었다.
동시대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을 뜻한다. 즉 조성 시기별로 그 목적이 달라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는 천체관측이 주 목적이었을 것이고, 어느 시대에는 제천 행사장이었을 수도 있고, 또 어느시대에는 정치적 모임의 장소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반드시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었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톤헨지를 조성한 목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한가지 목적으로만 귀결시켜, 주장의 우월성을 강조하거나 대중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런 결과로 스톤헨지가 무려 2000년에 걸쳐 조성되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간과하여 합리적인 해설을 어렵게 하였다.

스톤헨지가 천제관측소라고 주장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호킨스이다. 그는 스톤헨지의 거석 배열이 동지나 하지의 일출, 월출 방향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히 1912년에, 충격적인 논문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56개의 거석군은 월출지점의 이동주기까지 정확히 일치함을 주장하여, 고대의 슈퍼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스톤헨지를 이용하면 300년간의 일식을 이틀정도의 오차범위 내에서 정확히 예측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런데 고고학자 리처드 앤더슨은 이곳에서 동물의 뼈로 만든 핀과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재천 행위의 장소였을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스톤핸지가 조성 된 기간인 2000년 중, 아주 일부의 시기이기 때문에, 유골의 발견만으로 스톤헨지의 목적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최근들어 스톤헨지는 종합적인 천체과학장소, 즉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장소였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학설을 종합해 보면, 스톤헨즈의 거석배열은 천체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가까운 채석장을 놓아두고 평원 중앙까지 먼 거리를 날라와서, 또 그렇게 힘들게 세워야 했을까? 그이유는 이렇다. 우선 당시는 농경사회가 정착하는 단계이다. 솔즈베리 언덕은 솔즈베리 평야를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에겐 대단히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또한 하늘에 대한 경외심은 인류의 변치않은 정신세계이다. 이들은 하늘을 우러르고 경배할 대상을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또 제물을 바쳐 하늘을 경배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한 시기에 제한되었을 지라도....

고대인들에게 하늘에 대한 외경심은 종교적 신앙이나 마찬가지였고, 또 거석을 세우는 것은 신앙활동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가장 아름답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구조물들 만들어, 하늘을 경배하였을 것이다.
우주에 대한 무한한 신비감과 경외심...수천, 아니 수만년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인류의 동경...아마도 스톤헨지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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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이 뜨는 모습에 맞춰 지어진것으로 추측되는 구조물의 모습
●미국의 보스톤에 있는 스톤헨지와 같은 유적지 이야기●
미국의 보스톤에서 40마일 떨어진 지점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확인된 정체불명의 석조 구조물이 있다. 1887년경 근처를 지나가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이 구조물은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영국의 스톤헨지와 돌의 배열이 거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현재 미스테리 힐이라는 지명이 붙어있는 이 구조물은 고고학자들 사이에 아메리칸 스톤헨지 라고 불리워 진다. 영국의 스톤헨지와는 다르게 돌의 크기가 작고, 지하로 사람이 걸어 내려 갈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이 미스테리 힐은 4,000년이 지나도록 크게 부식 되지 않아 오늘날에도 아무리 많은 관광객이 동시에 지상에 서있고, 지하로 들어가도, 견고하게 서 있다.

현재 이 구조물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이유는 아무도 그 구조물을 누가 축조 했는지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이 미국에 오기 훨씬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 이 구조물은 인근에 사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이 구조물은 우리 조상이 만든 구조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어, 이는 인디안 원주민보다도 훨씬 전에 미 대륙에 정착했던 미스테리의 문명인들이 지었던 스톤헨지가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 냈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문제의 구조물이 초현상적인 힘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이유는 1,700년대 미국 메사추세스에서 자행된 마녀재판이 모두 미스테리 힐이 있는 살렘시 근처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1887년에 미스테리 힐을 발견한 농부는 유적지 근처에서 1700년대에 만들어 진것으로 보이는 수레 바퀴를 발견하였다고 하나, 몇대째 살렘시에서 살던 그는 자신의 선조들이 단 한번도 후손들에게 미스테리 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해 했다.

후에 그 이유를 조사한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마녀 재판시 많은 여인들이 "금지된 장소"를 방문했던 죄로 재판을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고, 역사에 기록된 그 금지된 장소는 바로 미스테리 힐임이 근래 밝혀지게 되었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건축한 같은 부류의 정착민들이 건설한 것으로 추측된 미국의 미스테리 힐은 기원전 2,000년에 살았던 사람들이 대서양을 넘나들며 건축물을 지었다는게 현대 고고 인류학적으로 납득이 되지않기 때문에 학자들에 의해 탐사연구 자체가 행해지지 않았다.

미스테리 힐에는 스톤헨지와는 다르게 사람을 제물로 바칠때 쓰인것과 같은,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있다고 하며, 돌 제단 주위에는 사람의 뼈로 추청되는 여러 개의 유골이 발견 되었으나, 이는 학계에서 학자들이 문제의 장소를 발굴 조사하는 것을 지원해 주지 않아 영원한 미궁속에 빠지게 되었다.

과연 스톤헨지나 미스테리 힐과 같은 거대 건축물을 건설한 고대인들은 무엇때문에 그 구조물들을 건설 하였던 것일까? 혹시 이 구조물들은 현재 지구인들에게 밝혀지지 않은 문명인들의 오래전 종교의식에 사용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영국에 스톤헨지를 지은 고대인들과 미국의 스톤헨지들을 만든 고대인들은 동일 종족이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비슷한 시기에 대서양을 넘어 자신들의 건축물들을 건조할수 있었던것 일까?
그리고 고대 살렘시의 주민들은 왜 미스테리 힐을 금지된 장소로 정한 뒤 그곳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것 일까?
 
- 지하로 들어갈수 있는 구조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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