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김운하(40)가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지 닷새만이었다. 고시원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고인이 방에 들어간 15일 오전 2시께 이후 사망한 채 발견된 19일 9시쯤까지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은 것이 확인돼 그 시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서울연극제 연출상을 받은 ‘인간동물원초’에서 주연을 맡았고, 내달 있을 재공연 무대에도 오르기로 예정됐을 정도로 연극계에서는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었지만, 그건 ‘그들만의 리그’ 속 얘기일 뿐 사실상 오랫동안 무명배우였고, 그래서 극단으로부터 받은 월급은 30여만 원에 불과했다. 할 수 없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극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지만 대학시절에 권투와 격투기 선수로 활동할 만큼 건강했던 육체는 고된 노동에 무너져갔고, 결국 지병인 신장질환이 악화돼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고인의 가족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장례는 대학 선후배가 치렀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아사 직전이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2011년 안양의 월세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이웃집 문에 붙인 메모다. 평소 췌장염을 앓던 그녀는 전기와 가스가 끊긴 방안에서 며칠을 굶다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가난한 예술인의 비극이 계속되자 2012년 국회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고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의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지원대상자 심사에만 3달 이상 걸리고 선정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예술계의 반발만 샀을 뿐 거의 실효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올해는 예산 문제로 신청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수입 100만 원 이하가 무려 67%나 된다. 이번에 죽은 김씨처럼 50만원 미만의 극빈곤층도 25%나 된다. 최씨의 사망 때도 그랬듯 김씨의 외로운 고독사가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체로 그 여론은 비난이고 그것은 관계 부처와 유명 스타들을 비롯한 연예계의 시스템에게로 향한다. 정부 입장에서야 답답할 수도 있다. 국민들은 세금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집행해야 할 예산이 산더미다. 여기에 대중예술인 지원금까지 예산에 편성해야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할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3년 전 입법기관인 국회가 예술인복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행정부처에선 이를 현실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잘 실행해야 마땅하다. 예술계의 ‘선정기준’ 논란을 곧바로 현실적으로 수정해 입법부 행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한, 예술인들에게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졌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국익을 극대화한 한류열풍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무명배우와 작가가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은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배우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 등의 남자 톱스타를 비롯해 여자배우 중 ‘신 스틸러’는 대부분 연극판 출신이다. 오늘날 우리의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연극판이다. 죽은 김운하는 어쩌면 ‘미래의 송강호’였을지도 모른다. 최고은 작가 역시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대중의 슬픔은 CF 한 편 찍으면 10억 원씩 받는 정상급 스타들과의 비교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국내외의 큰 재앙 혹은 사건 사고 때 대중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기부로 ‘이름값’을 한다. 하지만 극소수다. 더구나 그런 기부자 중 극빈의 대중예술인을 위한 실효성 있는 사회환원이나 지원금 쾌척 소식을 들려준 바 없다. 고작해야 유관 협회에 마지못해 회비를 낼 따름이다.
더불어 회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고료를 받는 드라마 작가들도 심각한 고민으로 동료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이름값’을 금과옥조로 알고 편성을 가늠하는 방송사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작품의 완성도는 제쳐두고 편성에 목매 이름난 작가에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거액의 고료를 선뜻 내놓는 제작사의 관행이 바뀔 것이다. 연극이란 콘텐츠가 영화나 드라마보다 우월하다고 우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서울만 예로 들자면 대학로에서 현재 영화와 드라마를 주름잡는 배우들 대다수가 배출됐고 심지어 ‘개그콘서트’와 ‘웃찾사’가 탄생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관계 부처부터 연예계와 대중까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가 영양과 맛이 풍부한 열매를 맺기 위해선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한류영화 한류드라마의 뿌리가 바로 연극이고 연극배우며 시나리오 작가다.그들이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그들 자체가 한류열풍의 근간을 이루는 훌륭한 자산이다. ‘하루아침에 스타’는 없다. 송강호도 김윤석도 다 김운하처럼 연극판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로지 연극에 대한 열정과 연기에 대한 신념 하나로 버텨온 끝에 그 노력과 의지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연극이 없었다면 ‘명량’도 ‘극비수사’도 없었다. [TV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