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약물 담은 초소형 물체에 박테리아 붙여 몸속 세포로 이동 ▶1987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이너스페이스"에는 몸집이 작아진 주인공들이 초소형 비행선을 타고 인간의 몸속을 누비는 장면이 나온다. 이너스페이스 속 주인공들처럼 사람의 몸속에 투입될 만큼 작은 초소형 로봇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과학계에서는 최근 박테리아를 이용해 로봇을 만드는 "박테리오봇(Bacteria + Robot)"이 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치료 약물을 담은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크기의 작은 물체에 수많은 박테리아를 붙여 몸속을 돌아다니게 한다는 것이다. 약물을 담은 물체가 로봇 몸통이라면 박테리아는 로봇의 다리 혹은 바퀴인 셈이다. 박테리아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배터리 등 전원이 필요 없다. 또 세포 안으로 깊이 침투하는 능력이 있다. 의료용 마이크로로봇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
◆박테리아와 로봇의 만남 박테리아를 이용한 로봇은 2006년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처음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 대학 메틴 시티 교수팀은 박테리아가 잘 붙는 폴리스티렌이라는 물질로 공 모양 물체를 만들었다. 공의 겉면에 "세라시아 마르세센스"라는 박테리아를 여러 개 붙였다. 세라시아 박테리아는 여러 박테리아 중에서 운동능력이 매우 뛰어난 종류. 연구팀은 박테리아들이 꼬리를 움직이며 공 모양 물체를 이동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박테리아가 물체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붙어 꼬리를 흔들어댄다면 이 물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연구팀은 물체에 산소를 쬐면 그 부분은 박테리아가 붙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물체의 원하는 부분에 박테리아를 배치할 수 있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연구팀은 자기장에 반응하는 MTB라는 박테리아로 로봇을 만들었다. 초소형 물체에 MTB를 붙이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자기장을 걸면 이 물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원리를 이용했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매우 작은 모터를 박테리아의 힘으로 돌아가게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식중독균 박테리오봇으로 항암치료 연구 국내에서는 전남대 기계시스템공학부 박종오 교수팀이 박테리오봇으로 질병이 생긴 부위에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연구팀은 SU-8이라는 고분자로 한 변 길이가 3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인 정육면체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 정육면체 외부에 세라시아 마르세센스 박테리아를 붙여 초당 5㎛ 정도의 속도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테리아를 여러 면에 붙이지 말고 한쪽 면에만 붙이면 이동이 더 빠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화학회 학술지인 "랩온어칩"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현재 살모넬라균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식중독의 원인균인 살모넬라는 암세포를 좋아하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박종오 교수는 "보통 항암제는 암세포의 표면에만 작용하는데 박테리아는 암세포 속까지 침투할 수 있다"며 "이를 이용한 항암치료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