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CSI 열풍 타고 법의학 인기… 신기술 연구도 활발 ▶피부 서식하는 박테리아로 지문 채취 머리카락 한 올로 범인의 동선 추적 ▶지난달 19일 서울 강동경찰서가 밝혀낸 한 살인사건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서울 도심 한 야산의 공사장에서 백골 상태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놀랍게도 두 손만 썩지 않은 채였다. 지문을 채취한 경찰은 이 시신이 5년 전 가출신고된 김모 여인임을 알아냈다. 결국 당시 그녀의 동거남이 살인범으로 밝혀졌다. 시신의 두 손이 썩지 않은 이유는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여인의 영혼은 편히 눈감았을 것이다. 만약 시신의 두 손마저 뼈만 앙상한 상태였다면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법의학 기술로는 백골만 남은 시신의 신원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법의학 신기술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미국 법의학계는 법의학 수사관들의 활약을 다룬 "CSI 시리즈" 덕분에 인재와 자금이 몰리면서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
법의학의 대표적인 기술은 지문감식이다. 지문감식은 1800년대 개발돼 1902년 영국의 법정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지문 감식이 어려운 범죄현장이 적지 않다. 지문 감식이 틀릴 확률이 20%나 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손가락 지문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박테리아 지문이다. 사람의 피부에는 100여종에 이르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은 사람마다 피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구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동네마다 지형이 다르듯, 개인마다 독특한 "박테리아 지형"을 지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사용하는 3개의 컴퓨터 키보드에서 면봉으로 박테리아를 채취했다. 이들의 유전자정보(게놈)를 분석, 일종의 지형도를 만들었다. 이를 각 키보드 사용자의 손가락에서 채취한 박테리아 지형도와 비교했더니 거의 일치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마우스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 박테리아 지문의 유효성을 재차 확인했다. 이 기술은 지문이 지워진 범죄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유타대 연구팀의 아이디어는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발상과 닮았다. 사바랭은 저서 "미식예찬"에서 "당신이 뭘 먹는지를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겠다"고 썼다. 유타대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머리카락. 이 대학 지질·지구물리·생물학부 튀어 설링 교수는 "머리카락은 당신의 음식물 섭취상태를 기록하는 장치"라고 말한다. 사람이 물을 마시면 체내 수분의 성분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머리카락 성분에 반영된다. 머리카락은 사흘에 평균 1㎜의 속도로 자란다. 길이 20㎝의 머리카락은 약 20개월치의 삶의 궤적을 담은 것이다. 특히 모근에 가까운 부분일수록 머리카락 주인의 최근 상황을 반영한다. 연구팀은 미국 내 600개 도시의 수돗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외부인의 출입이 드문 소도시 65개를 골라 현지의 이발소에서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수거했다. 연구팀이 수돗물과 머리카락의 산소와 수소 동위원소 분포를 비교했더니 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미국 지역별 머리카락 성분 분포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만 있으면 머리카락의 주인이 어디에 살았고 어디를 거쳐왔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 같은 방법으로 2000년 유타주의 소금 호수인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 인근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체의 신원을 알아내는 작업을 현지 경찰과 진행하고 있다. ◆"박테리아 CSI" 등 법정 등장하려면 시간 걸릴 듯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MC 대학 의대 연구팀은 혈액 분석만으로 나이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주 "최신 생물학(Current Biology)"저널에 게재된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체내의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특정 DNA는 사람이 늙을수록 감소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갓 태어난 영아부터 80세의 노인까지 200명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9년의 오차 범위 내에서 혈액 주인의 나이를 맞힐 수 있었다. 혈흔밖에 남은 게 없는 범죄현장에서 이 기술을 활용하면 용의자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신기술이 당장 법정에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아직 적잖은 탓이다. 예컨대 박테리아 지문의 경우 항생제를 먹으면 바뀌는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만지는 물건에서 특정인의 박테리아 지형도를 콕 집어 복원할 방법이 있는지 등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법의학자들은 또 혈액으로 나이를 알아내는 기술도 오차범위가 ±5년 내로 줄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