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3주간의 소중한 연수를 마친 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과 3명의 학생은 지난 2월 12일 귀국했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이끌고 갈 젊은 학생들의 인상깊은 경험은 그대로 우리나라 장례문화 발전을위한 밑거름이 될것을 확신한다. 연수기는 앞으로도 몇차례 더 연재될 예정이다. |
●오늘은 도쿄행이다. 도쿄에 있는 와다회사로 견학을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다. 일본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정말 다르다. 그 누구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책, 핸드폰 아니면 잔다. 떠드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내 우리도 분위기에 휩싸여 조용히 있었다. 이렇게 4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도쿄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였는데 마침 식이 시작하기 1시간전이었다. 우리는 회사 건물 곳곳에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찍은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당히 배려심이 강하다. 한국에서 온 연수생이라고 밝히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깐 당연히 ok를 했다. 그러면서 참으로 우릴 좋아해주고 우리에 대한 것을 물어봐 주셨다. 한국에서 장례에 대한 공부를 한다니깐 참 신기해하시면서 우리는 갑자기 둘러싸여서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식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 화려한 제단에 눈길이 제일 먼저 갔다. 역시 일본은 제단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곡선미를 살려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흰색만이 아닌 핑크색 장미를 넣어 조금 더 화사하고 화려하게 하였다. 고인이 생전 핑크색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면 하는 것이 일본의 특성이다. 우리나라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화로 통일하는 것은 안 좋은것 같다. |
제단 앞에 저렇게 관이 놓여져 있고 뚜껑이 열려져 있어 저 곳으로 고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은 제단에 있어 필수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지 노력하고 연구한다. 장례식장 입구 앞에도 역시 꽃이 놓여 있다. 건물 곳곳에 화장실에도 꽃이 놓여있다. 정말 일본장례문화는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난다. 그리고 일본의 모든 장례식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와 시신이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2개가 존재 한다. 이곳은 사람과 관이 같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쯔지도에 있는 와다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이곳은 같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따로낼 건물공간이 부족하였다고 한다. 도쿄도 땅이 비싸서 건물을 크게 올리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관을 움직임을 줄이는 쇠사슬도 같이 있다. 또 오른쪽 사진은 문스토어이다. 일본의 아이디어이다. 관이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문을 열고 닫아야 할 상황이 많다. 이때를 대비해 스토어를 준비하여 식이 있을 때는 항상 저렇게 해놓고 문을 열어 놓는다. 식이 끝난 뒤 직원들이 꽃을 자르는 모습이다. 식이 끝남과 동시에 꽃집직원과 장례식장 직원들은 재빠르게 꽃을 제거한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꽃을 자르면서 유가족들이 기다리지 않게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꽃은 준비가 되어져 있었다. |
밥은 역시 외식업체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밥 먹을 때에도 사진과 꽃으로 제단을 설치하여 밥 먹을 때도 고인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위록을 쓰는 곳이다. 안쪽에 수납공간이 있어 짐을 넣을 수 있다. 이것도 실용주의 일본의 아이디어다. 작은 공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위록 쓰는 곳 앞에는 저런 테이블이 하나있다(사진-4). 저것의 용도는 조위록 쓸 때 조문객의 짐을 올려놓으라고 있는 테이블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코트나 가방 등 짐이 많은 조문객을 위한 배려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 하나가 고객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선 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장례식장과 화장장과의 거리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동선이 정말 가깝다.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루고 바로 화장장으로가 화장을 한다. 거리가 가까우니 정말 편하다. 연로하신 분들은 버스를 이용해 가고 젊은 사람들은 걸어서 화장장을 갔다. 화장장은 사립화장장으로 개인화장장이었다. 사립화장장의 규모며 내부의시설은 국공립 화장장보다 더 좋았다. 내부는 정말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되어 있으며 근무자의 복장은 통일하고 여성근무원과 남성근무원으로 100명이 넘었다. 화장로는 총 1층에만 10기가 있었다. |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곳 장례식장 직원들은 화장장까지 따라오며 에스코트를 해준다. 그런 장례식장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곳에는 과자며 차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사립화장장에서 장례지도사에게 주는 배려라 고한다. 일반 유가족은 이용할 수 없으며 장례지도사들만 화장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면서 쉴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천장에는 화려한 상드릴레가 달려있어서 건물 내관을 더욱더 고급스럽게 만들고있다. 이렇게 도쿄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사설 화장장이란 곳도 가보고 과연 사설이기에 할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국립이었다면 못했을 것들은 사설이라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능동적인 태도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건 분명했다. |
이런 점이 너무 부럽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인데 왜 우리나라는 죽음을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마냥 일본이 부러워지는 하루였다. |
●오늘은 일본에서 처음 상조회사가 개입된 장례식을 보았다. 상당히 규모가 큰 장례식이었다. 우리가 있는 쯔지도에는 상조회사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상조회사가 개입된 장례식이라 기대가 많이 되었다. 왼쪽사진은 오늘 제단의 도안이다. 이곳은 그날 제단할 도안을 이렇게 출력하여 꽃제단사가 이사진을 보고 작업을 시작한다. 기독교장례식의 도안이다. 원래 개신교, 천주교 장례는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하는데 오늘은 와다장례식장에서 하였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사진과 보이는 모양으로 모든 것을 다시 재정비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뒤 커튼도 만들고 나무제단을 다 해체한 뒤 모든 인원이 투입되어서 장례식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제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높은 직위의 분이신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정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는 50개정도의 의자를 150개 넘게 날랐다. 모든 직원들이 정말 요원처럼 자기가 맡은 일을 각자 척척 알아서 다해내는 모습이 참 이들은 장례식장 직원이 아닌 FBI같은 요원의 모습이었으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이곳의 모습이 전형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제단사들도 분주히 움직이며 제단의 모습이 다 완성되기 시작하였다. |
이렇게 제단과 의자의 정열을 다하고 잠시 숨 돌릴 틈도없이 음향기기 셋팅과 2층 3층에 있는 관람실 의자정열과 조명점검, 음향기기 테스트로 들어갔다. 옆 사진에서 보이는 곳이 관람실이다. 식장내부의 자리가 모자라면 이곳으로 와서 모니터를 보면서 장례식을 참관한다. 이곳까지 장례식장을 포함 3곳의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조문객이 많이왔다. 장례식 장면은 촬영불가여서 담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들은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행사를 준비하는 행사요원이었고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함을 추구하고 행동하나하나가 서비스의 정신이 깃든 정예요원이라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으며 몸에서 몸으로 체험하면서 이들의 서비스 정신과 직업 정신을 느끼게 되었다. |
우리나라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지 않다. 이런 주문은 첫 상담에서 이루어진다. 사진의 배경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좋아 하셨는지 즐기셨는지 모든 사항을 장례식과 접목시켜 준다. 이런 서비스 정신이 바로 또 다른 이익의 창출과 또 고객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아닐지……. 우리나라도 이런 점을 도입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
●일본군 출신의 장례식이 있었다. 여태껏 많은 장례를 본적은 없지만 이렇게 많은 화환이 들어온 것은 처음 보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환이기에 이렇게 많이 들어와도 사람들이 있을 자리는 충분했다. (장례행사 중 사진 촬영 할 수 없었음) 이번 장례는 행사 식순이 영결식장 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볼 수 있도록 놓여 있었으며 고인의 영정과 함께 있어 더욱더 눈길이 많이 갔다. 이곳에서는 검은 리본을 거의 쓰지 않았다. 제단장식은 전부 꽃으로 했으며 관위를 일장기로 덮어 놓고 그 위를 고인이 평소 읽던 책과 안경 유품 등을 올려놓았으며 관의 얼굴 부위만 열어 얼굴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와다 장례식장의 사회로 모든 의식이 진행이 되었으며 고인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마지막 편지를 읽고 살아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흐느끼며 말하는 모습에 우리와는 다른 점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우린 유족을 바라보거나 영정을 등지고 읽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고인을 직접 바라보고 하는 모습에서 고인을 위한 장례를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캐논 변주곡 과" time to say good bye" 등 커피 선전에서 자주 나오는 듯한 편안한 음악으로 연주를 했다. 발인 바로 전에는 온가족의 사진 촬영이 있었다. 어렵게 모인 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 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노약자나 장애우를 위한 시설이 항상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을 했다. 운구차량에 올라타기 위한 그 작은 높이에도 발판을 준비해 밟고 오를 수 있도록 모든 차에 발판이 준비 되어 있었고 휠체어 역시 배치되어 있었다. (고령화에 따른 조치로 보이기도 함) 운구차에 올라타는 짧은 거리에도 경호원이 경호를 하듯 우산을 일일이 씌여주며 차에 태워주는 모습을 보며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가 일반 대기업과 맞먹는 정도 인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고객서비스와 제단이 꾸며질지 매일 매일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