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라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산지법 제3민사부(재판장 오동운)는 보험회사가 자살한 A씨의 유족을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A씨의 유족에게 6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보험사측에 명령했다. A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통을 겪다 2012년 12일 경남 양산시의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후 A씨의 유족은 보험사를 상대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A씨가 사망한 만큼, 보험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보험사측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보험금지급채무가 면책된다"는 보험약관을 근거로 반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자살은 정신적 문제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로 보험금을 부당하게 지급받기 위한 목적으로 보험사고를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망인이 중한 정신질환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목을 매 사망한 만큼, 약관상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자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은 공정성을 잃은 조항으로 무효"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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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도 보험금 받는다
1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당국은 정신질환의 실손보험 보상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시행령 및 시행세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늦어도 올해 안으로 개정을 예고한 뒤 내년 상반기 시행할 것"이라며 "정신질환 중 우울증, 불면증 등 가벼운 치료로 완치되는 병증이 (보상범위 대상에)포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감독원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에 따르면 실손보험 표준약관은 우울증 등 모든 정신질환을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보험금의 지급사유-장해분류표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우울증 등의 질환 △정신분열증 △편집증 △조울증(정서장애) △불안장애 △전환장애 △공포장애 △강박장애 등 각종 신경증 및 각종 인격장애는 보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보험업계는 환자 차별을 없애겠다는 당국의 개정 취지엔 기본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의 가입을 받을 경우 손해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진단과 치료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객관적인 보상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정신질환이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선 조금 우울해서 병원 상담을 받았는데 보험금을 받지 못할 경우 부당하게 느낄 수도 있다"면서도 "보험사로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자살 위험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자살 원인은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로 조사돼 정신질환과 자살 간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사망률은 10만명당 31.2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 역시 "질병분류 기준으로 정신질환인 'F코드'가 나올 경우, 웬만한 보험사들은 계약인수를 거절한다"며 "가장 큰 이유는 자살 우려"라고 털어놨다. 현재 생명보험은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자살의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하게 돼있다. 실손보험은 경우에 따라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데, 정신질환자의 보험가입은 보험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신질환자 보험가입 거부 못해' 법 개정 의견
금융위 방침과 별개로 정신질환자의 보험가입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도 국회에 올라와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 조항(97조)'에 '정당한 이유 없이 정신보건법 제3조 제1호에 따른 정신질환자의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행위'가 신설됐다. 신 의원은 "약물 치료 등으로 쉽게 호전되는 가벼운 정신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경우에도 보험사가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어, 정신질환자가 진료 이력을 남기길 꺼려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4월 소관위인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전체회의를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