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기록만 전하던 고려 장경 ‘밀교대장’ 발견

고려시대 간행 기록만 전해지던 <밀교대장'(密敎大藏)>이 발견됐다. 서지학자 박광헌 선생은 최근 호림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소장품에서 <밀교대장> 권61을 찾았다. 고서들은 1970년대 박물관 창립자인 윤장섭 회장이 박물관 운영주체인 성보문화재단에 기증한 것들이다.



    

발견된 <밀교대장>은 다라니(진언)만 추려 모은 것으로 31.5×11.6㎝ 크기이다. 장정은 접는 구조인 절첩장에, 표지는 감청색이 도는 감지(紺紙)로 만들어졌다. 은가루로 테두리를 두르고 안에 <밀교대장> 권61이라고 적었다. 1장에 30행 15~16글자가 적혔다. 남아있는 장수는 전체 21장 가운데 17개 장이다. 제15~18장은 없어졌다.  박 선생은 “<밀교대장>은 보상화 문양으로 표지를 장식한 고려시대 일반 사경과 달리 장식적인 요소를 없애고 감지에 책 이름만 기입했다. 이는 고려말 13~14세기 목판본을 절첩으로 장정할 때 흔히 보이는 양식”이라고 했다.


수록된 진언이 담긴 경전 제목과 그것을 옮긴 사람도 기록했다. 해당 경전에 수록된 진언은 산스크리트 문자의 일종인 실담자(悉曇字)로 적고 한자로 병기했다. 발견된 권61에는 6개 경전의 다라니가 담겼다. <금강정경유가수습비로자나삼마지법> <대위력오추슬마명왕경> <부동사자다라니비밀법> <천수천안관세음보살대신주본>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주본>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 등이다. 권말 하단부에는 산원 벼슬의 김청이라는 사람이 목판에 새겼다는 ‘散員金靖刻(산원 김청 각)’이라고 적었다.


박 선생은 “<밀교대장>은 경전 진언만을 가려 뽑아 구성한 새로운 방식의 편집체제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수록된 경전의 ‘磻(반)’이라는 함차(보관박스 번호)와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함차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조대장경에 수록된 경전의 함차를 따르지만, 재조대장경에 수록된 진언을 똑같이 수용하지는 않고 진언을 선별하고 순서를 재구성해 편집했다”고 했다. “나아가 재조대장경에서는 진언의 한문 번역만 실은 경우에도 밀교대장은 실담자와 한역을 병기함으로써 밀교대장을 편찬할 때 참고한 다른 판본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박 선생은 “<밀교대장> 권61이 간행된 시기는 권말에 나타난 각수 ‘산원 김청(散員金靖)’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김청은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김준(金俊)의 아들이었다. 김준 정권에서 판각됐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이는 고려 원종 즉위년인 1259년에서 김청이 낭장(郎將)이 되기 전인 1265년 사이이다. <밀교대장>은 조선 초기까지 유통됐다는 흔적이 산발적으로 보인다. 조선 세종 때 팔만대장경판을 요구한 일본에 밀교대장경판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1424년 일본으로 보내진 밀교대장경판은 교토 상국사에 보관되다 이듬해 화재로 소실됐다. 남권희 교수(경북대)도 지난 2008년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출토된 복장물 가운데 <밀교대장> 권9를 찾았다. 두 사람은 16일 한국서지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배너

포토뉴스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