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매장과 화장한 분골(粉骨)을 모시는 봉안의 중간형태인 "자연장(自然葬)"은 분골을 생분해 용기에 넣고 묻는 친환경 장례법이다. 그 위엔 잔디, 화초나 나무를 심는다. 유골은 빠르면 6개월 만에 흙으로 돌아간다. 유럽에서 도입됐다. 각 지자체는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공동묘지를 자연장지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중. 지난달 완공된 중대공원은 대표적인 사례다. 중대동 공동묘지(6만690㎡·1만8358평)는 이미 2001년부터 더 이상 빈자리가 없었고, 신고 없이 무작정 묻은 묘도 많았다. 광주시는 매장 묘 1801기를 전부 이장한 다음, 그 자리에 자연장지를 만들었다. 광주시청 가정복지과 박성영(45) 팀장이 말했다. "이걸 여성 공무원 한 명이 3년에 걸쳐 해냈습니다." |
2007년 초부터 3년간 광주시청 "묘지 담당" 임희란(34·현 오포읍 주민센터 근무)씨 휴대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임씨는 2000년 채용된 광주시 사회복지직 7급 공무원이다. 그전까진 주민센터에서 주민생활지원 업무를 했다. 그런 임씨가 "지나가리라"를 외치게 된 건 시청 발령 4개월 만에 "광주시 묘지 담당"을 맡으면서부터다. 임씨가 말했다. "광주시는 팔당 유역도 있고 산지가 많아 풍수(風水)가 좋다고 해요. 용인과 함께 전국에서 묘지가 가장 많죠. 민간 재단법인 묘지가 7개, 공설묘지만 25개입니다. "도와주겠다"는 팀장 말만 믿었어요." 박성영 팀장은 "공무원들 사이에 "국내 묘지 담당 공무원 평균 근무기간이 2.3개월"이라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만큼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임씨는 ""조상 묘"에 민감한 민원인들이 감정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아 욕설 듣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2007년은 광주시에 각종 묘지 업무가 겹쳤던 해이기도 했다. 신축 예정인 봉안당 근처 주민 300명이 임씨를 찾아와 "집단민원"을 넣었고, 관련 소송 10여건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중대공원 사업"을 벌이자니 첩첩산중. 임씨는 일단 분묘 주인이라도 찾겠다는 마음으로 묘지를 돌며 식별번호를 매겼다. 세어보니 전부 1621기. 묘지를 찾아오는 연고자 파악에 1년 반이 걸렸다. 이전비(210만원)로 알아서 이장하겠다는 묘지가 714기, 시에 맡겨 자연장지에 다시 묻겠다는 묘지가 560기, 답신 없는 무연고 묘지가 347기였다. 무연고 시신은 따로 화장해 충남 부여 봉안당으로 옮기기로 했다. 임씨는 차 안에 늘 왕소금을 넣고 다녔다. "몇몇 직원들은 "삼재(三災) 때문에…"라며 말 섞는 것도 불편해했어요. 집에선 제사 음식도 못 만지게 했고요. 이해가 갔지만, 속상했죠." |
▶냄새에 "핑"…어느덧 유가족 얘기 들리더라 2008년 11월, 개장이 시작됐다. 임씨는 1년간 묘지로 출퇴근했다. 개장 작업은 한 기당 평균20~30분 걸린다. 수습한 유골은 봉고차에 실어 목포의 화장장으로 보낸 후, 임시로 부여의 봉안당에 안치해 뒀다.평소엔 죽은 동물도 제대로 못 쳐다봤다는 임씨는 "일로 대하니 겁이 하나도 안 났다"고 했다. "큰 뼈가 나오면 "대퇴골인가 봐요"라고 맞장구치고, 골반뼈 모양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맞혔어요. 좋은 묏자리에 있던 유골은 빛깔도 베이지색으로 좋더라고요." 물론 주춤한 적도 있었다. 개장작업이 한 달쯤 지났을 무렵, 2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공동묘지가 개발되더라도 반드시 남편 옆에 합장해달라"고 했던 어느 할머니의 시신을 개장할 때다. "요즘엔 시신에 비닐을 덮어서 안치하다 보니, 육탈(肉脫·살이 없어지고 뼈만 남게 되는 현상)이 더디게 진행돼요. 관을 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훅 끼쳤어요. 이장 업체 아저씨는 마스크도 안 하고 일하는데, 저는 머리가 "핑" 돌아 주저앉았어요. 막걸리 한 사발에 가라앉았죠." 모두 뼈만 남았는데 곱게 모은 두 손만은 피부까지 생생하게 남은 시신도 있었다. 임씨는 "계속 지켜보니 두려움과 호기심이 모두 사라지고,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한 할머니는 덤덤했죠. 그런데 관이 보이자, 갑자기 무덤으로 뛰어드시며 오열했어요. "나도 데려가라"면서. 포클레인이 움직이는데, 바닥에 앉아 양발을 애들처럼 구르며 우셨죠. 원망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진 거예요. 저도 뛰어들어 붙들었지요." 자연장에 불만이 많았던 한 가족은 개장 후, 관 속에 탁한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거듭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전비를 두고 두 가족이 서로 한 묘지 주인이라고 나서기도 했다. 오솔길 주변 평지에선 무연고 시신 180구가 더 나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무덤이 평지가 되고, 그 위에 다시 무덤이 들어서고, 또다시 길이 생겼다. "무연고"처리 된 묘지 중에 가족이 뒤늦게 나타난 경우는 30건이었다. 임씨는 이들을 데리고 부여 봉안당으로 갔다. 이 중 10기는 자연장지에 다시 모시기로 했고, 나머지 가족은 "이전비"를 받아갔다. 시에 개장을 맡긴 무덤 560기 중에서 목포 화장장까지 따라간 연고자는 다섯 가족뿐이었다. 개장 및 자연장 조성은 작년 말 끝났다. 중대공원은 1년간 남은 공간을 정비했다. 임씨는 올 초 "4년차 묘지 담당자"에서 풀려났다. 요즘은 오포읍 주민센터에서 예전에 하던 주민생활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1일 찾은 중대공원은 조용한 산책로 같았다. 임씨는 "순식간에 사람들 인식이 변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좋아지리라 믿는다"고 했다. 최근 아파트 주민들은 공원 주변을 비추는 은은한 무지갯빛 전등을 보고 시청에 항의했다. "묏자리에서 나오는 도깨비 불인 줄 알았다. 당장 흰 불로 바꿔 달아라!"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