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48조원 규모 전망은 비현실적 ●한국 노인의 경제력은 美·日의 3분의 1 ●"노인들의 수"가 아닌 소득이 중요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실버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2020년에 실버시장이 148조원 규모로 커진다는 정부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실버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버산업이 발달한 일본과 미국의 경우 고령층이 부자인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호주머니가 가볍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2006년 기준 1521조원)의 20%로 미국이나 일본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부산하게 일고 있다. 서비스산업, 로봇산업, 바이오산업, 실버산업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 가운데 실버산업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정부 연구기관의 진단이다. 세계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라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 보고서(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실버시장 규모는 2002년 12조8000억원에서 2010년 43조9000억원으로, 또 2020년에는 148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연 평균 성장률이 무려 12.9%에 이른다. 이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실버산업은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기자의 현장 취재와 전문가 인터뷰 결과, 정부의 148조 실버시장(2020년) 전망은 현실감이 떨어진 탁상공론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실버시장 규모가 향후 10년 동안 5조~10조원 수준에 머물 전망이며, 시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노인 소득이 실버산업을 키운다 정부 보고서는 일본과 미국을 예로 들며 "한국도 고령화사회에 접어듦에 따라 실버산업이 급성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올해 전체 인구의 10%선에서 2018년 14%로 높아지고, 2026년에는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는 이처럼 노인 수가 많아지면 실버상품도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인들의 수"가 아니라, "노인들의 소득"이라는 지적이다. 실버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일본의 경우, 60세 이상 노인이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75%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은 50세 이상이 전체 금융자산의 77%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쉽게 말해 일본과 미국의 고령층은 부자라는 뜻이다. 실버 비즈니스가 두 나라에서 번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세대학교 이규식 교수는 "실버산업은 선진국의 예로 볼 때 국민소득이 3만 달러는 되어야 성장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돈이 없는 한국의 고령층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노인들은 너무 가난하다. 본지가 조사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금융자산 분포도에서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가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2006년 1521조원)의 20%에 불과하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한국 노인의 경제력은 일본과 미국 노인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것이 한국에서 실버산업이 뜨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세청 조사도 비슷하다. 국세청 소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32%는 금융자산은 물론이고 소득이 한 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빈곤 선에서 허덕이다 보니 병원도 못 가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노인들의 50%가 월 10만~12만원의 돈도 못 내 요양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실버타운이 고전하는 이유 실버산업 가운데 현재 비즈니스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주택산업이다. 실버타운 건설과 농촌전원마을 조성사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버타운은 주택 한 채당 2억~6억원의 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버타운 업계는 크게 고전하고 있다. 90년대 말 이후 30여개의 실버타운이 생겼으나 대부분 망했다. 수억원에 달하는 입주금도 큰 부담이지만, 집을 떠나 실버타운에서 살려는 노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블카운티 이호갑 상무는 "수요가 별로 없다 보니 실버타운 대부분이 입주자 부족으로 적자경영을 하고 있다"면서 "값싼 실버용품은 모르지만,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실버타운 분양 사업은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중국제품이 휩쓰는 실버제조업 국내 실버박람회에 가보면 침대, 휠체어, 지팡이, 목욕용품 등이 전시 매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한편에서 장묘업체들이 납골당 분양홍보를 하고, 식품업체들이 건강 드링크를 팔고 있다. 실버 로봇, 고령자용 자동차 등 고가의 첨단제품이 번쩍이는 미국과 일본의 실버박람회와는 딴판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실버업체 대부분이 자본금 10억원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연구투자비를 넉넉하게 쓸 수 없고, 그래서 제품의 질도 고만고만하다. 고령친화용품산업협회 이규연 회장은 "시장 규모가 열악한 상태에서 고가품 시장은 일본 업체가, 저가품 시장은 중국 업체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국내업체 대부분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고용창출 규모는 미지수 정부가 실버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신규 고용 창출 효과 때문이다. 정부 예측에 따르면, 실버산업 취업자는 2020년 68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전무는 "실버시장 성장세를 과대 추정한 결과, 고용 창출 규모를 너무 낙관적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일부 업종에서 인력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요양산업이 그런 분야이다. 일본의 경우, 젊은이들이 일은 힘들고 임금은 낮다는 이유로 요양산업 취업을 기피해 산업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일본 요양업계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일할 사람을 수입해다 쓰고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이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日, 노인 절반이 月 20만~35만엔 연금 일본은 노인 천국이다. 65세 이상 노인 수가 26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달한다. 노인이 많다 보니 전국 곳곳에 노인 쇼핑센터와 노인 거리가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노인용품이 숱하게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일본은 전체 개인금융자산(1700조엔)의 75%를 60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할 정도로 노인이 부자인 나라이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상속 문화도 우리나라보다 약하다. 나를 위해 먼저 돈을 쓴 다음에 돈이 남으면 그때 자녀에게 준다. 일본 노인들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외제 자동차를 구입하고, 해외 여행을 자주 즐기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안정된 연금제도도 노인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해준다. 30~4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다음 퇴직을 할 경우, 매월 20만~35만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일본에선 이 정도의 연금을 받는 노인이 전체 노인의 50%에 달한다. 연금이 이처럼 충실한 데다, 보유 재산까지 많다 보니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한 실버산업이 번성하는 것이다. 시니어커뮤니케이션 이완정 사장은 "일본과 한국은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너무 다르다"면서 "일본시장을 고려하여 한국의 실버시장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실수투성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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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가 되면 실버산업이 꽃을 피운다." 사회복지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실제로 요즘 신문을 보면 고령자용 쇼핑몰, 실버보험, 실버타운 판매광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실버산업을 지방특성화 산업으로 선정,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실버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실버산업은 정말 지방자치단체들의 희망대로 지방경제를 살리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3가지 변수를 점검해본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효과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714만명(전체 인구의15.2%)에 달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부분 고졸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소비 수준도 부모 세대에 비해 높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버산업협회 김한옥 회장은 "부모 세대와 다른 생활 가치관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는 씀씀이가 크기 때문에 장차 큰 실버 수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큰 도움이 못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자녀 교육비 부담 때문에 노후 대비가 부실한 상태에서 기업 구조조정으로 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현 노인 세대에 비해 사정이 다소 낫다고 할 뿐이지 경제력이 취약하기는 매한가지"라며 "베이비붐 세대가 한꺼번에 은퇴를 하면 오히려 나라 전체가 심각한 소비감소 현상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만원 이상 연금소득자 추이 한국 노인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생활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주택연금 판매 부진이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받아쓰는 주택연금은 작년 7월 도입됐다. 이 상품은 인기를 모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시행 10개월 동안 이용자가 600명에 불과했다. 신한은행 서춘수 스타시티지점장은 "지금 추세라면 판매 건수가 1만 건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노인들의 생활이 풍족해지려면 결국 연금소득자가 많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노후생활 대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현재 평균 수령액이 30만~40만원에 그치고 있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에 가입한 사람도 전체 근로자의 5%선에 불과하다. 시니어커뮤니케이션 이완정 사장은 "실버산업이 발전하려면 월 2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고령층이 많이 늘어나야 하나, 우리나라는 현재 이 비율이 3.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 확대 실버 비즈니스가 대부분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그치고 있는 데 비해 현재 구체적인 시장이 존재하는 곳이 요양산업이다. 요양산업은 아픈 고령자들을 보살피고,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용구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민간시장으로 존재해왔으나, 오는 7월부터 시작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라 정부가 대금 지급을 보장하는 "확실한 실버시장"으로 바뀐다. 문제는 장기요양보험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커지느냐이다. 실버산업 종사자들은 노인 증가에 따라 요양보험 수혜자들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나,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에 부정적이다. 우리나라 국고(國庫)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선우덕 박사는 "독일과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보험 수혜자의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해 갈 것으로 본다"면서 "요양보험이 도입됐다고 해서 실버시장이 급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