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의식’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지내왔습니다. 올해 치러진 세 번의 국가적 장례를 계기로 이를 되찾자는 제안을 하려 합니다.”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기독교장례예식연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날 발족한 이 위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산하 특별위원회로, 범 교단 차원의 기독교계 장례 예식을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생겼다. 이의복 전북 남원 서남교회 목사, 김점동 서울 창동제일교회 목사 등 8명의 목회자 및 장로가 위원을 맡았으며 앞으로 전문 연구위원들을 따로 둘 예정이다. 국내 예배학 연구의 선구자이기도 한 정 총장은 회의에 앞선 인터뷰에서 “김수환 추기경부터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세 번의 큰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유독 기독교 신자들이 ‘제의(祭儀)’의 부재에 대한 좌절감을 크게 느꼈다”면서 위원회를 제안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종교는 세 가지 요소를 구비해야 합니다. 믿는 대상과 내세관, 그리고 대상을 섬기는 의식이지요.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보고 그 종교의 신실함과 진정성을 판단합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의식에 대해 지나치게 소홀해요.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의 생각은 의식을 없애고 말씀만 남기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의식에 말씀을 채우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의식은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정 총장은 특히 우리 민족은 제의를 중요시하는 ‘제의 민족(ritual people)’이기 때문에 의식이 빈약한 종교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비신자들이 기독교보다는 천주교에 상대적으로 호감을 갖는 이유도 거기 있다는 것. “김 추기경 장례 때 국민들은 엄숙하고 격조 있는 장례의식을 TV 생중계로 보며 매료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전 대통령의 장례가 연달아 진행되며 4대 종교 의식이 나란히 비교되는 형국이 되자 기독교 신자들은 아쉬움을 느낀 거죠. 심지어 ‘좌절감이 들었다’는 의견도 들었습니다.” 정 총장은 “기독교의 의미를 잘 살리면서도 전통과 격조 있는, 또한 교단 경계를 넘어 범 기독교적으로 엄수되는 예식을 정립하도록 연구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위원회는 “앞으로 국가 지도자의 장례가 있을 때 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종교에 따른 예식만 치러지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총회 차원에서 정부에 건의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보여주기 식의 ‘균형’보다는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