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관리인의 발길이 멈춰선 곳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아들 내외가 묻힌 무덤에서 불과 10여m 사이에 자리했다. 묘비에 새겨진 `성혜림의 묘"라는 글씨와 `1937년1월24~2002.5.18"로 새겨진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다른 묘가 서쪽을 향한 것과는 달리 "성혜림의 묘"는 정반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또 봉분이 밖으로 크게 노출된 것도 주변의 러시아인들의 묘와 구별됐다. 그러나 봉분 위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묘비 주변에 낙엽과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것으로 미뤄 상당 기간 사람이 찾지 않은 듯 보였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빨간색 카네이션 조화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묘비 뒷면에는 `묘주 김정남"이라고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묘지 관리인은 "보다시피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러시아 정보 당국자들로부터 그 여성이 북한 국가원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의 부인이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왜 러시아 땅에 묻혀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그 답은 러시아 정부나 북한 측에서만 아는 듯하다"고 말했다. 배우 출신의 성혜림은 지난 1970년부터 김 위원장의 동거녀가 됐고 1년 뒤 김정남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74년 김 위원장이 김영숙과 결혼한 뒤부터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걸려 신병 치료차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러다 2002년 5월 모스크바 한 병원에서 사망했고 성씨의 시신은 사망 직후 북한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수해 갔고 모스크바 시내 공동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병원 치료 과정에서 `오순희"라는 가명을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묘지 관리사무소 사망자 명부에도 `오순희"로 기재돼 있었다. 묘지 관리인은 "사망자 명부와 묘비 이름이 다른 점으로 미뤄 묘비는 그 이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삼남 김정운 대신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가 됐다면 "성혜림의묘"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와 관련, 북한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묘가 방치돼 있다는 것은 현재 김정남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성혜림의 묘"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으나 "그런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