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엿집은 원래 양쪽에 상여꾼 16명씩 총 32명이 드는 대형 상여를 두던 곳으로 상량문에 "1891년 3번째로 옮겨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최초 건축연대는 훨씬 이전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대형 크레인과 트레일러를 동원해 상엿집 기와,서까래를 걷어낸 뒤 건물 본체를 그대로 옮겼고 기와공을 불러 지붕을 복원했다. 이전한 상엿집은 3칸 규모로 왼쪽칸과 가운데칸에 문짝을 단 마루가 있고, 오른쪽칸에는 장례용구를 보관했다. 내부에 상여를 올려두는 7m60cm짜리 방틀이 있으며 장례식에서 누가 상여를 메고 흙을 팠는지 등을 적은 문건 10여 점이 발견됐다. 국학연구소 측은 "옮겨온 상엿집은 현재 남아있는 것 중 가장 뚜렷한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장례용구와 옛 문건 등을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상엿집이 세월이 지나면서 흉물로 여겨져 주민 발길이 끊기면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2월 마을이장회의에서 상엿집을 없애기로 하고 인수자를 찾다가 연구소와 연락이 닿았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경북도와 문화재청 등에 이 상엿집의 문화재 지정을 건의하고 기금을 조성해 전통장례문화와 관련 용구를 관람할 수 잇는 상여박물관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국학연구소 관계자는 "예부터 관혼상제라 하여 장례절차는 한 인생을 마무리하는 소중한 의례였다"며 "복원 상엿집은 전통문화와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까지 문화재로 지정된 상엿집은 경북도문화재자료 384호인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안동상여집 1곳뿐이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