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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문인 101명이 미리 쓴 유언장 출간

 
한때 유언장 쓰기가 유행했다. 급기야 기업체 신입사원 연수과정에도 필수항목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 상징인 기업체의 신입사원에게 유언장을 써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기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죽을 힘을 다해 기업에 헌신하라는 다짐의 강요다. 그렇지만 유언장조차 천박한 유행으로 변질되는 세상이라도 누구나 맞을 죽음, 그것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오늘을 마지막처럼 생각하는 담백함과 솔직함은 부질없는 생을 그나마 알차게 되돌아보게 하는 쓰디쓴 보약이다.
문인들이 쓰는 유언장은 어떻게 다를까. 피천득 황금찬 도종환 이해인 전상국 한말숙 이해인 공선옥 하성란 등 노장청에 이르는 한국사회 문인 101명에게 가상 유언장을 쓰게 하고 그 ‘답안지’를 묶어낸 책이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출판사)이다. ‘공개될’ 유언장을 의식해 미사려구를 동원한 문인들도 있고, 실제로 당장 오늘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는 생의 불안을 감안해 진지하게 유산배분까지 거론한 이들도 있다.

가장 솔직하고 감동적인 유언장을 쓴 이는 소설가 공선옥이다. 유달리 가난과 모성을 천착해 글을 써온 그는 “대학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기어코 나와야 쓴다. 왜냐하면, 아직 이땅의 현실이 고등학교만 나온 여자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 해도 그걸 뒷받침해 줄 상황이 안되니, 너는 어떡하든 동생들을 거두어 먹여야 할 가장 책임 때문에라도 대학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만약에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면 엄마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어른들(그분들 명단은 별첨하겠다)을 찾아가거라. 그래서 돈이든, 뭐든, 일단 도움을 요청하거라… 내 사랑, 내 심장, 내 피, 내 살, 내 새끼들”이라고 썼다.

“혼자라고 울지 마. 네가 처음으로 엄마 없이 친구들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갔던 것처럼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렴”(소설가 하성란) 같은 쓸쓸한 유언은 담백해서 슬프다. 소설가 한말숙은 거두절미하고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 아빠는 손이 안가는 분이시니까 너희들 중 여건이 맞은 사람이 아빠 가까이서 살면 된다”고 했다. 지독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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