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두 문중이 400년간 묘지 다툼을 벌였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청송 심씨 일가와 윤관 장군 묘역. 앞쪽이 청송 심씨 묘이고 윤 장군 묘는 돌담으로 가려져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명문가인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사이에 400년 가까이 끌어온 ‘산송’(山訟·묘지에 관한 다툼)이 문화재위원회의 묘지 이전계획 승인으로 일단락됐다. 이로써 영조대왕조차 해결하지 못한 두 문중의 묘지 다툼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경기 제2청은 최근 중앙문화재위원회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1111) 장군 묘역(사적 제323호)에 조성된 심지원(1593∼1662) 묘(경기도 기념물 제137호) 등 청송 심씨 조상 묘 10여기 이전계획 등을 승인했다고 23일 밝혔다. 2005년 양쪽 문중의 후손들은 윤관 장군 묘역 내에 있는 청송 심씨 조상 묘 10여기를 이장하고 파평 윤씨 문중에서 이장에 필요한 부지 8000여㎡를 현재 위치에서 120여m 떨어진 곳에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나 그동안 문화재 이전 승인이 나지 않아 묘지를 옮기지 못했다. 경기 제2청 관계자는 “경기도 및 중앙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 보존과 관리 등을 신중히 검토하느라 시일이 다소 오래 걸렸으나 양 문중의 대승적인 양보와 화해를 존중해 묘지 이전계획 등을 승인했다”며 “경기도 지정 문화재인 심지원 묘에 대해서는 내년 3월쯤 전문 발굴기관의 발굴조사를 거쳐 이장이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 문중 사이의 묘지 다툼은 조선 중기인 1614년 청송 심씨의 수장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이 윤 장군 묘 바로 위에 부친 묘를 조성한 뒤 일대 땅을 하사받아 문중 묘역을 조성하면서 비롯됐다. 파평 윤씨 일가는 이에 반발해 100여년이 지난 1763년 윤 장군 묘를 되찾겠다며 심지원 묘를 일부 파헤쳐 오랜 다툼으로 비화됐다. 양 문중은 모두 조선시대 왕비를 서너명씩 배출한 대표적인 외척 가문으로 당시 임금이던 영조가 고민 끝에 두 개의 묘를 그대로 받들도록 해 화해를 구했으나 파평 윤씨 일가가 이에 불복해 심지원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매를 맞아 죽는 등 원한만 깊어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두 묘가 3m 남짓 떨어져 있는 데다 윤 장군의 묘역에 2m 높이의 돌담이 설치돼 심지원 묘의 앞을 가리는 등 조망권 문제로 후손들의 다툼이 이어져 왔다. [경기도 제2청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