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일의 국내무덤 부장품, 숟가락의 의미

2015.01.20 10:57:39


한국문물연구원 정의도 원장,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 출간…고분서 나오는 생활도구 분석●

한국인이 식사할 때 숟가락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유독 한국만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한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숟가락을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나라 옛 무덤에서 숟가락은 부장품으로 많이 발견된다. 왜 숟가락을 무덤에까지 가져가게 됐을까. 최근 발간된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정의도 지음·경인문화사)는 이에 대한 해답이다. 그동안 고분에서 나온 부장품 중 숟가락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문물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을 맡은 저자는 2002년 경남 고성군 신전리 민묘군 발굴조사 때부터 숟가락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22기의 조선시대 분묘에서 14점의 숟가락이 나왔다. 저자가 10년 넘게 연구해 이번 책자로 펴낸 숟가락 부장품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먼저 백제 무령왕릉 출토 청동 수저.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형태인 데다 부장품도 풍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청동 수저 3점과 젓가락 2쌍도 확인됐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최초의 수저다. 저자는 이 청동 수저에서 동시대 중국 남조와 북조와는 다른 백제의 '독자성' 또는 '고집'을 읽었다. 무령왕릉이 남조의 영향으로 축조됐음에도 ▷지석에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고 간지를 사용한 것 ▷당시 남조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던 가위를 부장하는 대신 청동 수저를 선택한 것 등에서 백제만의 독특한 장례 방식 '고집'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숟가락이 본격적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것은 고려시대 이후다. 숟가락은 13세기부터 부장품으로 쏟아지는데, 앞서 11세기를 지나면서 고려의 무덤에서 숟가락이 부장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이는 고려말까지 이어진다. 왜 이처럼 많은 숟가락이 부장품으로 선택됐을까. 이는 고려와 요·금·원 등 북방 문화권 대외관계와 직결된다. 요나라와의 교류로 고려의 부장품 조합에 변화가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식단에 국이 등장한 것은 숟가락을 필수 식사 도구로 만들었다. 이어 금나라, 몽골의 침입과 원나라 지배를 겪으면서 육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고, 숟가락은 일상의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됐다. 이에 따라 평생 쓰던 숟가락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숟가락 사용은 육식에 대한 욕구가 더욱 켜저가던 조신시대에도 이어지지만, 숟가락을 부장하던 장례 풍습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확 바뀐다. 조선 후기 무덤에서는 드물게 상평통보 등 동전이 출토될 뿐이다.  이는 조선 성리학이 사회 전반의 가치 기준으로 정립됨에 따라 '주자가례' 등 유교적 장례 방식 역시 널리 보급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고려 인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된 은제 숟가락과 젓가락.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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