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활(終活 웰다잉)’과 ‘수활(修活 수양활동)’

2014.11.03 15:36:50

‘아름다운 마무리'의 발전적 극복을 시도하는 개념

●‘아름다운 마무리'의 발전적 극복을 시도하는 개념 ●

「인생을 졸업한다는 운명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노인이 될 준비,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여 자기의 인생을 수업한다. 이런 각오가 인생을 예술처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생을 수업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죽음의 불안을 초월하여 영원히 사는 길을 구하는 '수활(修活)'이야 말로 진정한 '종활(終活 웰다잉)'이 아닐까 ?  본인은 많은 일본인들이 염려하는 노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행복한 죽음을 맞아 들이기 위한 핀트를 여기에 맞추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글 중에서]  ☞☞


일본 후쿠오카에 소재한 대형 상조회사인 (주)썬레- CEO인 이찌조 신야(一條眞也)는 필명으로 기업에서 쓰는 이름인 ‘사쿠마’ 사장은 유능한 경영인인 동시에 활발한 저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썬례-’ 그룹은 일본 전국에 장례식장과 결혼예식장 및 호텔 등 자체 시설을 40여개 소유한 기업으로 현 사꾸마 사장의 아버지대로부터 정,관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일본인들의 생활 전반에 뿌리를 내린 알찬 기업이다. 그는 일본 전국에 걸친 지점을 정기적으로 순방하면서 고객만족과 경영 수지에 정성을 기울이는 틈틈이 지금까지 주로 상조와 장례문화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해 냈다.


본지와도 인연을 맺어 지난 2006년 3월 26일 ‘하늘문화신문’이 주관, 사꾸마(필명 : 이찌조 신야) 사장의 장례문화 관련 저서 "아름다운 임종(원제: Romantic Death, 장만석 번역)"의 출판 기념식을 겸하여 여의도 전경련회관 특별회의실에서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일본의 웰다잉 잡지인 소나에(ソナエ)지에 '노복론(老福論)'이란 제목의 기고를 통하여 ‘종활(終活,웰다잉)'을 뛰어 넘는 '수활(修活)'이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종(終)‘이나 ’Dying‘은 마지막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자신은 원래 죽음이란 마지막이 아니라 생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확신하고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인생수업을 뜻하는 '수생활동(修生活動)' 즉 '수활(修活)'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은 아직도 '웰다잉'이 한창 이슈화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미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본지는 어떤 의미에서든 한번 쯤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그의 글을 소개하는 바이다.                           [편집자- 주]


                    참고 기사 - http://www.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873



<이찌조 신야의 노복론>

종활(終活, 웰다잉)과 수활(修活 수양활동)


작금, ‘웰다잉’ 붐이 일고 있다. 많은 잡지들이 '웰다잉'을 특집으로 다루며 세미나와 심포지움이 꽃피고 있다. ‘웰다잉’ 전문지가 많은 독자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종활(終活,웰다잉), 이제 그만 했으면" 등으로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다. ‘웰다잉’이란 용어에 위화감을 품은 사람이 많다. 특히 '다잉(Dying)'이란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더러 알고 있다. 원래 '종활(終活)'이란 단어는 '취직활동'을 의미하는 '취활(就活)'을 본 딴 것으로 '종말활동(終末活動)'의 약자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도 종말이란 용어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죽음(死)이란 끝난다는 것이 아니고 생명은 계속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본인은 '종말' 대신에 '수생(修生)' ‘웰다잉’을 뜻하는 종활(終活) 대신에 '수활(修活)'이란 용어를 제안하고 싶다. '수생(修生)'이란 문자 그대로 '인생을 수양한다'는 의미가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취활(就活)', '혼활(婚活)'도 넓은 의미의 '수활(修活)'이 되지 않겠는가? 학생시절의 자기를 닦는 일이 '취활(就活)'이고 독신시절의 자기 수양이 '혼활(婚活)'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집대성으로서의 '수생활동(修生活動)'이 있다.


유사 이래 죽음은 우리 인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테마로서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 이상 중요한 문제는 없다. 왜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가. 자기만 사라지지 않으면 안되는 이러한 부조리를 수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철학자가 죽음에 대해 사고하고 예술가들은 사후의 세계를 표현해 왔다. 의학과 생리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도 죽음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바로 죽음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미스테리인 것이다.


본인은 생각한다. 일찌기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인은 과연 아름다울까 ? 아름다운 곳인가? 추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일본인의 미덕이 되어 온 예절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은 망각해 버린 듯 염두에도 없다. 그것은 전후의 일본인들이 수업, 수양, 수신, 수학 등 용어로 상징되는 갈고 닦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  늙지 않는 인간,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죽음이란 인생을 졸업한다는 것이며 장례란 인생의 졸업식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을 졸업한다는 운명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노인이 될 준비,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여 자기의 인생을 수업한다. 이런 각오가 인생을 예술처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생을 수업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죽음의 불안을 초월하여 영원히 사는 길을 구하는 '수활(修活)'이야 말로 진정한 '종활(終活 웰다잉)'이 아닐까 ?  본인은 많은 일본인들이 염려하는 노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행복한 죽음을 맞아 들이기 위한 핀트를 여기에 맞추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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