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유적지를 누비는 한국 고고학자

2008.02.20 14:18:30

 
- 배기동 한양대 교수가 카스피해 남안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전기구석기 유적인 간지파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인류 문명 교차로’ 발굴…180만년전 구석기인 아시아行 길목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프라이드 승용차가 질주한다. 굽이굽이 외길을 달리는 데도 아랑곳 없이 가속페달을 밟는다. 건너편 눈덮인 이란의 깡촌마을, 오순도순 양을 기르며 사는 시골마을의 풍취를 느낄 사이도 없이….

10일 테헤란에서 서북쪽으로 300㎞ 떨어진 이란 길란 주 라시트, 그 라시트에서 다시 동쪽으로 150㎞ 더 떨어진 리야루드 마을. 카스피해 연안, 이란 북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엘부르즈 산맥의 북사면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이 마을로 가는 길은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을 만큼 험했다.

“이란 사람들조차 장담할 수 없는 여정이라 합니다. 이상기후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빙판으로 얼어붙고, 녹은 곳은 진흙으로 끈적거리는 길을 간다니 놀랄 수밖에요.”

기자들을 인도한 이한용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조사팀장의 말이다. 진흙길을 사이에 놓고 옹기종기 모인 산골 마을을 지나 오르내리길 또 몇차례. 돌아올 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조사단을 인솔한 자하니 길란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이 “다 왔다”며 손짓을 한다.

양떼가 지나는 좁디좁은 외길, 오른편은 70도 경사, 습기가 흠뻑 묻어있는 흙절벽이다. 한 10분 오들오들 거리며 갔을까. 자하니가 방향을 튼다. 훌쩍 절벽 아래로 발길을 돌린다.

“내려가야 동굴유적이 보입니다. 갑시다.”

할 말을 잃었다. 이란의 깡촌마을에까지 와서 비명횡사할 수도 있는 순간. 그러나 예까지 왔으니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부들부들 떨리는 발을 경사면 아래로 내디뎠다. 미끄럽기 그지 없었다. 꺾인 나무 하나를 주워 지팡이를 만든 뒤 겨우 한발 한발 내딛기를 10여분.

드디어 동굴유적이 보였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두 곳씩이나.

“이란측이 최근에 발견해서 우리 연구소(한양대)로 알려준 그야말로 뜨끈뜨끈한 유적입니다.”(이한용 팀장)

이한용 한양대문화재연구소 조사팀장(왼쪽)과 이란 고고학자 자하니가 라시트 동굴유적을 조사하다가 수습한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시트 | 이기환 선임기자

함께 간 전문가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금방 동굴유적을 훑더니 토기 구연부 등 유물 조각들을 수습한다. 고슴도치 털까지 금방 건졌다.
 
- 이한용 한양대문화재연구소 조사팀장(왼쪽)과 이란 고고학자 자하니가 라시트 동굴유적을 조사하다가 수습한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초기 철기시대, 즉 BC 1000~BC 700년 사이의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한양대팀이 이번 여름에 오면 이란팀과 본격 공동조사를 벌이게 되지요.”(자하니)

이렇게 우리 고고학이 이역만리 이란, 그것도 심심산골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 이름은 ‘페르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이란 고고학 공동조사’이다. 이미 한양대 문화재연구소팀은 지난해 이란 북부 길란주의 동굴유적 15곳을 샅샅이 발굴했다. 그 결과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처음으로 무스테리안 식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긁개)을 발굴하는 개가를 올린 바 있다. 무스테리안 문화는 10만~5만년전까지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문화(현생인류는 아님)이다.

한양대 팀은 오는 6월15일부터 한달간 이번에 기자가 목격한 동굴 유적 2곳을 포함, 카스피해 연안 산골의 동굴유적 15곳을 본격 정밀조사할 예정이다. 그런데 왜 이란현장조사일까.

“이란은 인류의 탄생과 이동경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곳입니다. 아프리카를 탈출한 고인류와 현생인류가 북쪽으로 올라와 동서로 퍼졌는데 이란은 동쪽, 즉 아시아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조사단장인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인 코카서스 산맥, 즉 그루지야 공화국의 드마나시 유적에서 180만년전 유적이 확인됐다”면서 “이 성과를 접한 뒤 이란지역조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조사는 주로 3단계로 나눕니다. 180만년전 구석기인들의 이동경로와 이란지역의 구석기문화 진화과정, 그리고 5만년전 현생인류가 어떻게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행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번 조사단이 맛본 것은 양념에 불과하다. 기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간 동굴유적 역시 해발 600에 불과한 곳이다. 조사하는 동굴들은 보통 해발 1500~2000 산골의 절벽에 있게 마련이어서 생명을 걸고 벌일 수밖에 없는 위험한 조사다.

배기동 교수는 “올해까지 조사로 30여곳의 동굴유적을 조사하는 셈”이라면서 “올해로 프로젝트는 끝나지만 이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장기적인 공동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석기와 관련된 전문가가 별로 없는 이란측도 한양대의 조사를 반기고 있다. 지난해 구석기유물 발굴 때는 물론 이번 방문 때도 이란 국영TV 등 이란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이 조사는 한국-이란간 문화교류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영목 주이란 대사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교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고고학 공동조사 등 학술·문화교류는 의미심장한 일”이라면서 “대사관 차원에서도 적극 도와줄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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