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제 나도 누군가가 기댈 언덕인데

2019.12.04 11:11:33

30대, 이제 나도 누군가가 기댈 언덕인데

1. 자신의 환경이 곧 세계관이 되는

 

어린 시절 자주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다. 대충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거의 무릎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까진 곳이 또 까지는 바람에 짓무른 적도 여러 번 있다. 하지만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나았다.

 

30대가 된 후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몸의 회복력이다. 어릴 때는 무릎 깨져도 내비두면 금방 나았는데 이제는 반창고 붙이고 일주일은 조심해야 딱지가 앉는다. 내 몸에 있는 크고 작은 흉터도 전부 20대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나이를 더 먹으면 더 쉽게 다치고 회복력은 더 떨어질 것이다. 반면 어린 아이의 마음은 쉽게 상처받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말랑한 마음에 받은 상처는 극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아예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금이면 의연히 대처하거나 신경쓰지 않을 일도, 어릴 때는 실수를 하거나 밤에 괜히 곰곰이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는 자라나는 환경이 중요하다. 환경을 방어하는 방법을 모르고, 자신의 환경이 곧 세계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 먹어서는 건강관리가 중요하다. 세계관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데, 그 세계관을 환경에 맞출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래된 생각이다. 

2. 어머니 손, 아버지 눈가…시간 앞에서 경외심

 

내가 30대가 되고, 부모님이 60대가 되신 이후 우리 집의 풍경은 약간 변했다. 누가 딱히 선언을 하거나 그런 종류의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다.

그냥 역할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바뀌고 있다. 작은 변화들이 많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 궁극적인 변화는 하나다. 부모님은 나를 덜 걱정하시고, 나는 부모님을 더 신경쓴다.

어릴 때는 내가 받는 게 당연하고 부모님께 뭔가를 해드리는 게 특별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뭔가를 못해드리면 가슴 깊은 곳에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부모님을 지켜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는구나, 지금까지는 내가 부모님께 기댔지만 앞으로는 부모님이 기댈 언덕이 나구나, 싶은 거다.

 

얼마 전에는 가족 식사를 했는데, 엄마의 손을 보고 새삼 놀랐다. 손의 주름이 눈에 띄게 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리나 깨달음보다는 섭리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티비를 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눈가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부모님이 내가 살아온 날들의 두 배 정도를 사셨고, 앞으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만큼 더 사실 것이라는 사실이…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실체에 대한 종합적인 상상력을 부여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단편적인 상상만 가능했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가끔 생각할 때가 있는데, 생각을 너무 깊이 하면 늘 공포와 같은 경외심을 느낀다. 2019년은 이래저래 삶에 대한 조급증을 많이 버리게 되는 해인 것 같다.  (글: 유성호)

출처 :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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