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였던 두 사람이 맺어진 것은 1953년. 부모의 결정이었던 탓에 “결혼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쿼드리 씨). 경비원과 사무원으로 일하며 생활했다. 병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타자물리 씨를 위로하고자 흑백 TV를 구입해 인도 영화를 봤다. 아내가 사망한 후 슬픔에 빠져 있던 쿼드리 씨가 떠올린 것은 같은 주 아그라에 있는 세계유산 타지마할이었다. 반년 후, 인부 17명을 고용해 집 뒷마당에 있는 해바라기밭에서 높이 약 10m 크기의 첨탑 4개를 가진 복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연금을 털어 넣고, 땅과 귀금속을 팔아 돈 100만 루피(약 1,700만 원) 이상을 투입했다. 인구 1,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림도 받았다. 하지만 건설이 60% 정도 진행된 지난해 여름, 타지마할을 건설한 ‘현대의 샤 자한 황제’라고 현지 신문에 소개되면서 관광객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그를 비웃는 사람은 이제 없다.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짓고 싶다”. 지하에 타자물리 씨를 묻고, 옆에는 장차 자신이 아내 옆에 나란히 누울 수 있도록 안치 장소를 마련해 뒀다.